K여사님과 S아버님은 내 아내의 절친한 친구의 부모님으로 우리 병원에서 꽤나 먼 거리에 살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우리 병원을 찾아주시는 감사한 분들이다.
엊그제 K여사님은 임플란트 보철을 제작하기 위한 본(인상)을 뜨기 위해 아침 일찍 내원하셨다. 그런데 본인의 치료날이 아니면 오시지 않는 S아버님께서 '어제 갑자기 이가 하나 빠졌다'라면서 함께 오셨다. 나는 S아버님의 구강상태를 잘 알고 있기에 '그럴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입안을 보니 오른쪽 아래 작은 어금니가 하나 부러져 있었다. 평소에 약주도 많이 하시고, 단단하고 질긴 음식을 즐겨 드시는지라 마모가 심했던 치아가 부러진 것이었다. 치아의 상태가 살려 쓰기는 어려워 발치를 말씀드렸고 S아버님도 동의하셨다. 마취를 하면서 S아버님께 말씀드렸다.
"아버님, 이거 이 빼고 나면, 일주일 정도는 약주하시면 안 됩니다."
그 순간 S아버님의 표정이 얼음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그때 나는 보았다. 옆자리에서 소공포를 얼굴에 덮고 누워계시던 K여사님의 입술이 미소로 바뀌는 것을.
S아버님은 하루에 소주를 2병 정도 드시는 애주가이다. 몇 년 전 큰 병으로 수술을 받고 술을 끊은 듯했지만, 몸이 회복되고 나서는 다시 술을 드셨다. 그래서 K여사님은 S아버님 치과 진료가 있을 때마다 함께 오셔서는 나를 살짝 불러 "아버지한테 치료하시고 나서 술 드시면 안 된다고 말 좀 꼭 해다오"라고 당부하셨다. 나도 걱정되는 마음에 "치료하고 나서 약주하시면 많이 붓고 아프실 거예요. 잘 낫지도 않아서 치료기간도 계속 길어질 거고요. 술 드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어디 가겠는가... 치료 기간만 끝나고 나면 아버님의 술사랑은 다시 시작되었다.
무사히 발치가 끝나고 봉합을 한 다음 거즈를 물려드리면서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아버님, 술 드시면 많이 아플 수 있으니까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거즈를 꽉 물고 계신 아버님의 표정이 슬퍼 보인다. 아프거나 이가 빠진 것보다 술을 드시면 안 된다는 이야기 때문인 것 같다. S아버님께 뭔가 죄송스럽고안타깝다. 그런데내가 이 말을 할 때마다 옆자리 K여사님의 입술이 들썩거리는 것만 같다. 마치 웃음을 참고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