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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해이함

인간은 왜 권력 앞에 흐트러지는가?

by 채정완
권력의 해이함_acrylic on canvas_90.9X65.1_2025.jpg 권력의 해이함 Laxity of Power, acrylic on canvas, 90.9X65.1, 2025

대한민국은 여전히 징병제의 나라이다. 건강한 남성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에 군복무를 이행하여야 한다. 한국 남자라면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어른이 된다'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군대라는 집단생활이 이제 막 성인이 된 남자들에게 한국 사회의 민낯을 경험할 수 있는 첫 관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군대는 권력이 체계화된 집단이다. 각 계급이 존재하고, 그 계급장을 가슴과 머리, 팔 등 잘 보이는 곳에 명시해 놓는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행할 수 있는 권력이 늘어나고 그만큼 책임이 늘어난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실제 군대 사회에서는 권력만 늘어나고, 책임은 지지 않는 모습을 아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장교들이 사적인 목적으로 병사들을 동원하기도 하고, 거짓으로 초과 근무 보고를 하고 초과 근무 시간에는 자신의 볼일을 보는 등 자신의 권력을 자기 개인을 위해 남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간부들의 태도가 당연시되어 가면 규율을 어기는 범위도 더 커진다. 일부 고위 간부들은 군 내부 권력을 이용해 비리를 저지르기도 한다. 군납 비리나 군 건설 사업에서의 부패 사례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상급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니, 하급자들이 조직의 가치와 규율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모습이 군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조직화한 집단들에서 대부분 나타난다는 것이다.


권력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권력과 책임의 크기는 비례해야 하지만, 위의 예시들처럼 현실은 정반대로 가기 일쑤이다. 처음 권력을 얻었을 때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강하게 느끼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권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런 익숙함은 자기 점검을 소홀하게 만들고, 점차 절제력이 무너지는 원인이 된다. 또한 조직에서 높은 위치에 올라갈수록 지적받을 일이 줄어 들면서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자율성을 넘어서는 방종을 부여하게 되며, 결국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한다. 이렇게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해이해질 때 조직과 사회는 여러 문제를 낳는다.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조직의 규율과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이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중들 역시 사회 규칙을 따르지 않게 되고, 이는 결국 전체 시스템을 흔들어 사회에 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 자정 기능을 우선하여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단순한 연차와 능력만을 기준으로 하는 직급 상승이 아니라, 엄격한 윤리 기준을 요구하는 직급 상승 체계를 마련하고 조직 내부의 감시 외에도 외부적으로는 언론과 시민 사회의 감시를 통해 견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이런 체계와 감시를 통해 솔선수범한 리더를 만드는 것이 그 조직 전체의 해이함을 견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권력의 해이함' 작품은 이렇게 흐트러진 권력의 형태를 표현하고자 한 작품이다. 단정한 복장의 하급자들은 예의를 갖춰 상관에게 경례하지만, 상관은 풀어진 옷매무새에 건성으로 경례를 받으며 이들을 내려다본다. 권력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이 어떻게 해이해지는지를 상징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우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권력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며, 지속적인 자기 점검과 감시 없이는 쉽게 흐트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든 조직과 사회가 인식할 때, 권력을 가진 해이함은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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