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만 존재하는 사회 속 우리의 모습
현대 사회는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사회 현상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인간 사회 전반에 걸쳐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자본은 상위 1%에게 집중되고, 중산층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치솟는 부동산과 물가로 인해 노동을 통해 얻는 자본만으로는 이제 중산층 범위 안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졌다. 한편에서는 자본주의가 낳은 부의 편중을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 시장 경제의 원리를 강조하며 성공한 자산가들의 방식을 흉내 내 그들처럼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에서 타협과 조율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현대의 정치에서는 타협보다는 상대를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전략이 되었다. 선거철에는 항상 중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말이 나오지만, 결국 표심은 극단으로 몰리기 마련이다. 미디어에서 특정 진영을 표방하지 않는 사람은 소신 없는 방관자로 취급되어 특정 사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도록 압박받는다. 편향된 정보들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점점 '내 편'과 '네 편'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성별 강등 또한 극명하다. 한쪽에서는 유리천장을 깰 것을 요구하며 성평등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반발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혐오와 조롱이 난무하고,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상대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된다. 성별을 이유로 서로를 공격하는 흐름 속에서 연대나 균형은 공허한 단어로만 남아있다.
세계 또한 분열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은 점점 더 심화하고, 강대국들은 자국 중심의 경제 블록을 형성하며 협력보다는 배제를 선택해 자국 경제를 공고히 하려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갈등이 격화되고 그에 대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가 간의 협력은 줄어들고 서로서로 편을 갈라 대립하는 현상은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이런 현실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양쪽에 서 있는 두 인물이 중간에 서있는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가려 당기는 모습을 하고 있다. 중간의 인물은 그 위치를 지키려 하나 결국 더 강하게 당기는 쪽으로 이끌려 갈 것이다. 이 모습은 우리가 균형을 유지하려고 해도 결국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현실을 상징한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논쟁에서 중립은 비겁함으로 간주하거나, 단순히 양극단의 선택 전에 거쳐 가는 하나의 단계로만 여겨진다. 중간에 서서 양쪽의 입장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필요성은 무시한 채 그저 그 상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한 싸움만 계속될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단순한 이분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극단과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의 공간이야말로 대화와 조율, 화합이 이루어지는 자리다. 서로를 향한 당김과 반발이 계속될수록,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더욱 필요해진다. 우리는 이렇게 이해와 화합이 사라지는 양극화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중도라는 가치를 지켜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