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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Oct 05. 2024

사람을 환혹시키는 춤과 음악 그리고 추임새, 스페인

세비야에서 플라멩코 공연 보기

세비야에 가면 플라멩코를 봐야지.

따그닥 쿵쿵 발 구르는 소리

한쪽 위로 치켜든 손

화려한 옷자락을 휘날리며

올레~


스페인에 가기 전까지는

플라멩코가 뭔지 잘 몰랐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은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실제로 관람한 플라멩코는

관광객을 위한 눈요기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굉장했다.

숙소 근처 공연장에서 보고 돌아오는 길,

다른 플라멩코 공연을 또 예약했다.


관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모두가 숨죽여 무용수를 기다릴 때

기타와 가수가 작고 나지막하게 소리를 시작한다.

뱃속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동굴 벽을 긁고 새어 나오는 거친 소리.

칸타오르(남자 가수)와 칸타오라(여자 가수)가

나란히 의자에 앉아 소리를 켜켜이 쌓아 올린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에 손뼉과 발굴림이 추가된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는 어느 순간

바일라올라(여자무용수)와 바일라오르(남자무용수)가 등장한다.

춤사위와 음악 소리는 한때 얽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점점 절정을 향해 치솟는다.

거대한 모닥불을 앞에 두고

불꽃에 영혼을 빼앗겨 정신없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발을 구른다.


바일라오르와 바일라올라의 춤에는 절도가 있다.

세차게 옷자락을 흔들고 무대를 장악하다가

발을 구르고 모든 움직임을 일시에 정지한다.

그 멈춤이 오히려 더 큰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흥분이 올라오며 '올레' 소리를 토해낸다.


무용수들은 공연 내내 쉽사리 웃지 않았다.

상대를 애절하게 쳐다보다가

화난 얼굴이 되었다가

헐떡이는 숨소리가 상대의 얼굴을 데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땀방울을 떨어뜨린다.


애절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춤사위,

작고 느리게 시작했다가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음악,

칸타오르, 칸타오라의 추임새.

낯선 이곳의 공연에서

늘 연주하던 산조 음악을 떠올렸다.


우리네 한과 기쁨이 절제되어 스며든 산조에도

플라멩코처럼 애절한 감정이 흐르고 있고,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몰이 순으로

무겁고 느리게 시작했다가 점차 빨라지며,

관객을 흥분의 도가니로 끌어당긴다.

흥이 잔뜩 오른 고수와 관객은 '얼쑤' 추임새를 넣는다.

카리스마로 관객을 휘어잡고

긴장의 끈을 점점 조여오다가 어느 순간 확 풀어버려

휴 하고 한숨 쉬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플라멩코와 산조는 묘하게 닮아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숙소로 향하던 그때

흥분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귀에서는 거친 칸타오르의 목소리가 맴돌았고

강한 움직임에 머리끈이 풀려 산발이 된 바일라올라의 모습이 생생했다.


일상으로 돌아와 모든 걸 깡그리 잊고 있었는데,

사진을 꺼내보며 회상하는 지금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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