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도 밤에도 화려한 방콕의 색채
어린 시절 책에서 미술관에서 본 서양 그림에는
파란 하늘에 멋진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내가 보는 하늘은 그렇진 않았는데.
하늘색이라고 붙은 크레파스를
믿어야 할까 고민스러울 정도로
하늘은 희끄무레할 때가 많았고 회색일 때도 있었다.
구름은 뭉게뭉게 예쁘지 않을 때가 많았고
여름 홑이불이나 솜사탕을 집어 쭉 뜯어낸 것 같았다.
그러다 처음 유럽여행을 갔을 때,
와! 하는 감탄사와 함께
그림 속 하늘 풍경이 왜 그랬는지를 단박에 이해했다.
그네들의 하늘은 그림처럼 딱 그렇게 생겼었다.
그제야 지역마다 나라마다
사람과 음식만 다른 게 아니라
햇빛이 하늘빛이 구름모양이 제각각이라는 걸 알았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는
풍경이든 사람이든
카메라에 담긴 색채가 미묘하게 달라지기는 걸 느꼈다.
지난여름 다녀온 태국은
그야말로 여름의 나라답게
강렬하고 발랄한 컬러가 눈에 띄었다.
길거리 택시부터 시장에 널린 티셔츠,
카오팟과 땡모반을 먹었던 식당의 인테리어와
헬맷과 오토바이, 길거리 벽화그림까지.
거대한 나무와
복잡하게 얽혀 두꺼워진 전깃줄 뭉텅이
습한 날씨에 벗겨진 페인트가
하늘과 대비되어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색채들이
그림자를 비집고 나와
태양을 만나 활짝 벌리고 섰다.
그럼 태양은 기꺼이 두 손 내밀어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두 손을 맞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태양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그러다 까맣게 타들어갔다.
밀당을 대차게 하다 해가 사라지고 밤이 도래하면
그에 질세라 화려한 불빛이 온 도시를 휘감았다.
밝은 태양을 한동안 쳐다보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안에도 해가 떠있다.
눈 부신 풍경에 정신이 팔렸다가
갑자기 실내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밤이 된다.
그렇게 태국을 다녀온 며칠은
방콕의 풍경이 문득 떠올라 그리워지기도 했고
왠지 서울의 풍경과 하늘이 조금 밋밋해 보였다.
내 눈이 서울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불현듯 회사에서 받아본 퍼스널 컬러 검사가 생각났다.
봄웜도 여름쿨도 아닌 밋밋한 뮤트라는 판정에
전현무 컬러냐고 주변에서는 깔깔거렸다.
나는 쿨하게 웃어 보였지만,
강렬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못내 섭섭했다.
며칠이 지나자
강렬하지 않은 컬러 속에
수줍게 숨어있는 것들이 다시 눈에 띄기 시작했다.
햇빛은 왁 하고 달려들기도 했지만,
긴 꼬리를 만들어 숨어있는 귀여운 것들을
하나씩 훑어가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그 귀여운 것들을 찾기로 했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