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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구두를 신은
Aug 10. 2024
화두
- 사람을 보면 그 인생의 화두가 보인다.
사람마다 매여 있는 화두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자유이다. 옷에서도 자유를 추구하고 싶어 한다. 오늘은 사정이 이러저러하여 이렇게 옷을 입었다만, 이건 아니다, 한숨 쉬며 자신만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사회에 정해진 규칙이나 관례 같은 것을 보면 불쾌해하고 괜스레 그것을 깨고 싶어 한다. 밥은 꼭 남자가 사야 하나요? 직장은 꼭 들어가야 하나요? 공부는 꼭 해야 하나요? 결혼은 꼭 해야 하나요? 승진을 못하면 뭐 좀 그런가요? 이런 식의 질문을 달고 산다. 어떨 때 보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인지 그저 얽매이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어떤 이는 끊임없이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여왕벌과 같은 사람. 실로 여왕벌처럼 외양도 아름답고 사회적 지위도 좋은 편이다. 바지런한 성품 덕분에 집안일이나 대인 관계도 참 매끄럽고 훌륭하다. 다른 누군가가 이런 점을 칭찬하면 미소로 당신의 칭찬이 맞고 말고요 하며 덧대어 칭찬할 것을 말한다. 오늘 옷이 참 예쁘네요, 하면 네, 그렇죠? 저는 예쁜 옷을 정말 좋아해요. 어떨 때는 옷을 고르느라 잠을 설치기도 하죠. 고향이 부산이라 좋으시겠어요. 맞아요. 집에서 5분만 걸으면 해수욕장이에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갈 수 있죠. 자기애가 있는 만큼 표정은 우아하다.(절대 거만하지 않다. 거만한 것은 자신이 애착하는 자화상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완벽에 가깝다. 그러나 간혹 나는 의구심이 든다.(질투심이라 해석해도 어쩔 수 없다.) 그 완벽함을 이루기 위해 희생한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그 혹은 그녀의 완벽함 뒤에 숨겨진 간절한 소망과 결핍을 알고 싶다. 그래야 나는 마음문을 열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이는 깊은 우정을 추구한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 유독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것이 소수만이 추구하는 삶의 자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적당히 거리를 두는 사이를 싫어하고, 사람을 만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아예 사귀지 않거나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거나. 이 사람과 가까워지면 사람이 사람에게 쏟는 정성과 애정이 어떤지 알게 된다. 감사함으로 받는다면 신의 선물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정성과 애정이 담긴 선물을 받는 사람이 그것을 음미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고, 더 나아가 받은 것의 일부라도 되돌려주려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때로는 친밀하지만 때로는 데면데면한다.(상대가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할 때 달아날 준비를 한다.) 그러니 자신이 보여준 깊은 우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이번에 만난 사람이 그렇겠거니 하면서 다른 사람을 찾아보고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본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기대치가 서로 다르고, 맺는 방식도 결이 다르다 보니 실패가 거듭된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그는 혹은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우정이 실현되지 않음을 슬퍼할지언정 포기를 모른다. 그러는 중에 서서히 서서히 우울해진다.
어떤 이는 허위의식과의 전쟁이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데 입만 열었다 하면 멋진 말이다. 책의 멋진 문구들과 철학적 화두들, 그리고 매력적인 논평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도 현자인 것처럼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내면은 그처럼 견고하지 않으니 그것은 거짓이다. 만나는 상대에 따라 그것을 아는 이도 있고 모르는 이도 있겠다. 모르는 이는 이 사람을 현자라 치켜세우고 긍정의 화신이라 부르며 당신을 만나면 모든 것이 힐링되어 기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듣는 이는 그 말을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 자신이 그런 현자가 아니며 긍정의 화신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 보기 좋게, 듣기 좋게 하려는 사회화의 결과라는 것을 본인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 년 길들여진 이미지를 깰 만큼 용기도 있지 않아 그저 그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마음은 끊임없이 정직과 진실, 상처받은 영혼의 섬세한 위로를 갈구한다.
최근 어느 분의 브런치를 읽다가 놀라운 발견을 했다. 복잡하고 힘겨운 일상을 위트 있게 표현하여 읽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읽다 보니 그분의 글을 통독하게 되었는데 놀랍다. 2년 전에 쓴 그녀의 글은 무진장 어둡고 출구를 알 수 없는 사건과 감정에 빠져 있었다. 같은 사람이 쓴 것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달랐다.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 나는 그것이 글쓰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는 생의 화두가 내게도 있는 것 같다. 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때깔 좋게? 오늘처럼 좋은 토요일 노는 것도 포기하고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며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는 작가님들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