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이젠 모두 잊어버렸노라 다짐했는데.
지금 보니 나만 그 자리, 그 시간에 남아있었네.'
실제 나의 일기 속 내용이다.
저 내용을 쓴 날은 굉장히 우울하고, 지나칠정도로 감성적인 날이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일기 내용을 보고 저 내용이 어떤 상황에서 쓰인 일기인지 알아채신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그분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나는 평소 과거의 사람을 잘 추억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그 행동이 굉장히 미련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 미련한 행동을 스스로 하고 있을 때가 있다.
몇 해 전 본 영화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첫사랑에 아파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전하는 조언인데...
'지금 너무 아프다고 해서 억지로 그 감정을 떼내려 하지 마라, 그러다 보면 나중엔 남아있는 감정이 없을 거다.'
나는 실제로 누군가와 사랑을 하다가 그 사랑이 끝나면 조금은 매정할 정도로 그 감정을 다 지워보려 노력한다.
이별에 강하고 능숙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기 때문인 거 같다.
그래서 지워보려 노력을 해도 결국 다 지워지진 않는다.
그럼 그 지워지지 않는 감정을 아주 넓고 두터운 천으로 덮어버리곤 하는데, 그럼에도 한 번씩 훅 차오를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때에 이런 추억 속으로 빠져들곤 할까?
함께 갔던 그 장소?
함께 먹었던 음식?
아님 내가 문득 외로울 때?
나는 그 사람과 관련된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약해지는 것 같다.
저 일기를 쓴 날도 무심코 플레이리스트를 넘기다가 그 음악을 듣고 한참 빠져들었었다.
그렇게 음악을 듣다가... 얼마 전 그 사람이 너무도 큰 일을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게 생각이나 잘 지내고 있는지, 마음은 잘 추슬렀는지 궁금한 마음에 그 사람의 SNS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건너 건너 그 사람의 계정을 찾다가 어렵게 찾게 된 그 사람의 계정에 마침 그날 올라온 게시물이 있었다.
얼마나 힘들까? 나는 상상도 못 할 일을 겪은 그 사람이 잘 이겨내고 있을지 보고 싶어서 그 게시물을 눌러봤는데
이게 왠 걸...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과의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여행을 갔더라.
서로 맞춘 커플아이템, 그리고 레터링이 돼있던 케이크까지...
그걸 보고 있는데 기분이 너무 묘했다.
사실 그 사람과 헤어진 지 시간도 꽤 흘렀고, 나랑 헤어질 때 문제가 됐던 그 사람의 단점이 다른 이에겐 괜찮은 점일 수도 있으니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데도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그렇게 멍하니 그 게시물을 바라보며 생각해 보니 지금 느끼는 이 이상한 기분이 꼭 그 사람의 최근 모습 때문만은 아닌 거 같았다.
그 이상한 기분에는 낯선 내 모습도 한 몫한 거 같다.
그 사람과의 기억을 빡빡 다 지워냈다고 생각했는데, 노래 한 곡에 그 기억이 살아난다는데...
그런 내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사실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 있다는 것, 아름다운 한 장면이 있다는 게 결코 나쁜 게 아닌데...
그때, 그 시간에 행복한 미소를 짓던 나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게.
내가 가진 마음의 그릇이 커진다면, 그런 내 모습에 낯설지 않을 날도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