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일수록 남처럼 생각하자. 그럼 선을 넘는 일도, 실망하는 일도 줄겠지.'
혼자 살다가 다시 본가로 들어와 부모님과 함께 지낸 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릴 땐 그렇게까지 크게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30대가 되어서 이러는 게 굉장히 창피하지만...
나는 엄마와 전쟁 중이다.
엄마와 나는 하나부터 열 가지 맞는 게 하나 없다. 아, 기가 막히게 맞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입맛.
그것을 제외하고는 나와 엄마와 극과 극에 서 있다.
나는 굉장히 예민하고, 하나하나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굉장히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엄마는 되는대로, 일은 미루면 미룰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 위생에 대해 철저하게 대립하게 되는데, 강박증을 가진 나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하지만 나를 더 미치게 만드는 건 엄마의 반응이다.
"뭐 그거 가지고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
"나는 잘 모르겠는데?"
이런 엄마의 반응을 듣고 나면,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을 하곤 한다. 순간적으로도 그런 경험이 가능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엄마와 전쟁 중이었다.
사실 그날의 시작은 그렇게까지 될 일이 아니었는데...
너무도 사소했고, 내 입장에선 '알았다.'는 대답만 들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내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 반대로 대응한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날따라 날이 유난히 더워선지,
그날따라 내 컨디션이 좋지 못해선지,
엄마의 반응에 반사하듯 바로 모진 소릴 퍼붓고도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데,
엄마는 절대 거기서 끝날 사람이 아니었다.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
그 순간,
그나마 남아있던 내 머릿속 이성의 끈이 '뚝'하고 끊어지는 게 느껴졌다
'아, 엄마는 이 정도의 모진 소리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전보다 더 모질고, 날카로운 말을 퍼붓고는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한동안 걷고 싶은 생각에 일부러 집에서 조금 먼 카페로 목적지를 정하고, 귀에는 에어팟을 꽂은 채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시원한 콜드브루를 한 잔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머리는 그렇지 못하겠지만, 몸이라도 시원하게 온도를 내리고는 곧 울리는 진동벨을 따라 음료를 픽업했다.
음료를 가지고 앉자마자 얼음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마시고, 잠시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마침 랜덤으로 돌던 플레이리스트는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식히라는 의미인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드뷔시가 울리고 있었다.
내려놓은 잔을 멍하니 바라보니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일정한 크기가 되면 또르르르하고 떨어지더라.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내 힘듦을 조금만 이해해 줬다면, 엄마니까- 이해해 줄 수 있는 거잖아.'
많은 걸 바란 게 아니었다. 나를 조금만 알아주길 바랐다.
내가 매번 말하지 않아도, 내가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나의 아픔을 조금만 이해해 줬으면...
몸의 온도만큼은 아니지만, 뜨거웠던 머리도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엄마이지만, 그래도 결국 나 자신은 아니잖아.'
아무리 엄마라지만, 엄만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얼마나 복잡한 머릿속을 안고 사는지 절대 알지 못한다.
나 역시도 엄마의 모든 걸 다 이해할 순 없겠지.
만약 내가 동네에서 이름난 효자라 해도 나는 엄말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낳았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나와 가장 가까울 수밖에 없는 나의 엄마도 알고 보면 나 자신이 돼줄 순 없다.
그리고...
'만약 아까와 같은 상황이 나의 엄마가 아닌 완전한 남이었다면, 그래도 그렇게 모진 말들을 퍼부을 수 있었을까?'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에 대한 예의와 얼마 되지 않는 나의 체면 때문이라도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왜 엄마에게 그렇게 화를 냈을까? 남한텐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아무리 엄마라도 내 마음을 다 알아줄 수 없는데, 내가 아닌 건데... 왜 내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을까?
좀 더 생각해 보니 이건 엄마와 나와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가족보다 더 많은 이야길 나누는 친구에게도 그가 내 사정을 다 알아주지 못한다며,
때로는 나의 모든 걸 떼줘도 아깝지 않을 사랑하는 연인에게도 나의 전부를 알아주지 못하는 건 사랑의 온도가 낮아서라며,
나는 그런 실수를 자주 하곤 한다.
나 자신도 나를 다 모르면서, 다른 이들에게 나를 알아달라며 칭얼대는 거다.
"내 마음을 알아줘, 내가 말하지 않아도."
하지만, 이제 알아야 한다.
나보다 더 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은 없다는 걸.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설령 내가 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결국 '타인'이라는 것을,
그들일지라도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이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럼 나도 잘 모르는 날 알아달라며 선을 넘는 일도,
왜 날 알아주지 못할까 싶어 실망하는 일도 줄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