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로 읽는 디자이너의 진화 1.0
2003년 1월, 샌프란시스코의 맥월드(Macworld) 엑스포에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만의 발표를 위해 특별히 만든 도구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그것이 바로 키노트(Keynote)의 시작이었다. 파워포인트(PowerPoint)가 주류였던 시대에, 잡스는 자신의 기조연설을 더욱 아름답고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개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 질문에서 비롯된 창조였다.
초기 키노트는 넥스트(NeXT)사의 라이트하우스(Lighthouse) 디자인 컨퍼런스(Concurrence) 소프트웨어에서 영감을 받았다. 당시 애플의 임원이자 라이트하우스 디자인의 창시자인 로저 로즈너(Roger Rosner)는 새로운 프레젠테이션 도구의 개발에 깊게 관여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기술적 우월성만이 아니었다. 디자인의 우아함, 애니메이션의 부드러움, 그리고 사용자의 직관을 중시하는 애플의 DNA가 키노트에 담겨 있었다.
2003년 1월에 단독 프로그램으로 처음 공개된 키노트는 당시 기술 업계에 충격을 주었다. 맥 오에스 텐(Mac OS X)의 쿼츠(Quartz), 오픈지엘(OpenGL), 피디에프(PDF) 같은 차세대 그래픽 기술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키노트는 초보자도 손쉽게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만들 수 있게 했다. 특히 그래픽 프로세싱 유닛(GPU)을 활용한 쿼츠 익스트림(Quartz Extreme) 기술은 3차원 애니메이션과 전환 효과를 선사했는데, 이는 당시 파워포인트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능이었다.
처음에는 19.99달러의 높은 가격대에 판매된 키노트는 점차 애플의 오피스 스위트(iWork)에 통합되었다. 2005년 2.0 버전부터 문서 작성 프로그램인 페이지(Pages)와 함께 아이워크(iWork) 패키지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2006년 아이워크 06 버전에는 고화질(HD) 지원, 3차원 차트와 그래프 생성 기능, 그리고 자유형식 마스크 도구가 추가되었다. 2007년에는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인 넘버(Numbers)가 아이워크 08에 추가되면서, 애플의 생산성 도구는 더욱 완성도 높아졌다.
키노트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사용 환경의 변화를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키노트에 도입된 '이동 마법사(Magic Move)' 기능은 슬라이드 간의 객체 움직임을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주었다. 이 기능이 이토록 혁신적이었기에 파워포인트가 이를 '모핑(Morphing)'이라는 이름으로 따라잡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정말로 큰 변화는 2013년 10월 23일에 일어났다. 애플이 모든 신규 맥(Mac) 구매 사용자와 아이오에스(iOS) 기기 사용자에게 키노트를 무료로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가격 정책의 변화가 아니었다.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행위를 민주화하겠다는 애플의 철학적 선언이었다. 누구나 쉽고 아름답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 말이다.
아이패드(iPad)와 아이폰(iPhone)의 등장으로 키노트는 더욱 진화했다. 클라우드 기술의 발전으로 아이클라우드(iCloud)를 통한 동기화가 가능해졌고, 여러 기기에서 같은 프레젠테이션을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버전 11.0에서는 발표 중에 발표자 메모, 현재 슬라이드, 그리고 다음 슬라이드를 개별 윈도우에서 볼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는 발표자의 시선 처리와 청중과의 상호작용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어주었다. 버전 12.2에서는 공동 작업(Collaboration) 기능이 대폭 강화되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프레젠테이션을 편집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의 활동 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팬데믹(Pandemic) 이후 하이브리드 업무 환경이 일상화되면서, 이러한 기능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2024년 WWDC(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에서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가 공개되면서, 키노트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버전 14.3부터는 글쓰기 도구(Writing Tools)를 통해 프레젠테이션의 텍스트를 직접 교정하고, 다시 쓰고, 요약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미지 플레이그라운드(Image Playground)를 활용하여 프레젠테이션에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게 되었다.
2025년 WWDC에서는 더욱 진화한 애플 인텔리전스 기능들이 선보였다. 버전 14.4에서는 프레젠테이션에서 직접 글쓰기 도구를 사용하여 텍스트를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매직 무브(Magic Move) 애니메이션 기능도 인공지능 기반으로 더욱 지능화되었다. 지원되는 아이패드 모델에서는 애플 펜슬(Apple Pencil)의 호버(Hover) 기능도 추가되어, 글을 쓰고 스케치하고 그림을 그릴 때 더욱 정밀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오늘날 키노트는 단순한 프레젠테이션 도구를 넘어섰다. 아이오에스 17 이상, 아이패드오에스 17 이상, 웹 브라우저, 그리고 비전오에스(visionOS) 2까지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한다. 어디에서나, 어떤 기기에서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키노트가 파워포인트와 같은 경쟁 제품과의 호환성도 개선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파워포인트(Microsoft PowerPoint) 파일의 가져오기와 내보내기 기능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더 이상 어느 한 플랫폼에만 종속되지 않는 개방성을 추구하고 있다.
22년의 세월 동안 키노트는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 필요에서 출발하여,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사용하는 도구로 성장했다. 매 버전마다 새로운 기술이 탑재되었고, 사용자의 필요가 반영되었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했을 때도 키노트는 망설이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였다.
키노트의 여정을 보면,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창의성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복잡한 기능을 간단하게 만들고,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하면서도 전문가의 요구까지 모두 담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애플이 추구해온 철학이며, 키노트가 지금까지 사랑받아온 이유이다. 앞으로 키노트가 어떻게 진화할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그것은 인간의 표현 욕구를 더욱 자유롭게 해주고, 생각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꾼 꿈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