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하고자 또라이가 된 사정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몇 가지 나의 인생 원칙이 깨지게 되었다.
그 원칙이란
첫째, 뒤에서 남 얘기하지 말기
둘째, 남에게 민폐 끼치지 말기
셋째, 기분 상한 일은 바로바로 털어버리기
넷째, 누군가를 증오하지 않기
다섯째, 겸손하기
여섯째, 남탓하지 말기
등이 있다.
착한사람병에 살짝 걸린 나는 33년을 살아오며 이 원칙을 차근차근 정리해 왔고, 최대한 지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겉만 평화롭고 속은 피 튀기는 혈전이 난무한 회사생활을 하며 이 원칙은 와장창 깨지게 되었다.
뒷말하지 말자는 뜻이 있던 나는 갈등상황에서 당사자와 직접 대화를 나눠 오해를 풀곤 했다. 여태까지의 인간관계에서는 내가 인복이 좋았던 것인지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갈등이 해소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삶의 데이터를 단숨에 꺾어버리듯, 회사에는 사회생활 만렙 소시오패스 가스라이터들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 우리 부서에 그런 사람이 없었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난 우리 회사에서 손꼽히는 가스라이터와 같은 부서였다.
첫 시작은 괜찮았다. 그 분과의 갈등을 겪고, 솔직한 감정토로를 하며 오히려 더 정들고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았다. 나에게 누구한테 말 안 하고 본인에게 먼저 말해줘서 고맙다고도 이야기했고. 하지만 며칠 뒤 내 귀에 들어온 소식은 그 상사가 날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할 만한 소리를 하고 다녔다는 거였다. 잘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을지 납득을 할 수가 없었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니 주변에서도 알거라 생각해 그냥 넘어가려 했다. 그렇지만 이런 소식은 한 번이 아닌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 뒷말하는 상사와 비슷한 갈등을 겪은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100% 진실이 아닐 거라 생각해 주어 내게 말해주곤 했다.
착하고 여리여리한 나는 이제 없어져야 할 것 같았다. 내 속 깊이 감춰왔던 또라이를 드러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 나도 내가 겪은 억울한 일들을 적극적으로 토로하기 시작했다. 사내 고충상담부터 고위간부에게 찾아가 그의 갑질을 이야기하고. 그래도 약한 맘에 신고까지는 못 하였지만 내 나름의 용기있는 후빵을 날렸다. 신기하게도 효과가 있었다. 그는 날 조심하기 시작했고, 그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나 화난다고 상대까지 화나야 직성 풀리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던 내가 나에게 맘대로 하던 그에게 스트레스를 줬다니 우째 후빵을 성공적으로 날린 것 같다고 느꼈다. 그렇게 난 그를 극혐 하게 되었다. 매일 부당한 대우를 떠올리다 보니 가끔은 원래 나라면 넘길만한 일도 예민하게 반응할 정도로 극혐 했다.
그리고 그 극혐은 나를 아프게 했다.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을 일주일에 5일 이상 하는 건 참 피곤한 일이었다. 긍정적이던 나는 더 이상 없어졌다. 나를 조심하다 본인도 모르게 막말하는 상대에게 혹시 모를 필살기로 갑질 증거들을 계속 모으며 일하기도 바쁜 와중에 나는 피 말라 갔다. 공공기관의 특성인 것인지 갑질신고와 고소가 난무하는 회사에서 나 또한 그렇지 않으면 당하고 사는 바보가 되는 것 같아 변하게 되었다. 차라리 원래 피도 눈물도 없이 똑 부러지게 고소하는 성향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텐데. 기존의 내 성향과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건 너무 힘겨웠고, 이는 늘어나는 흰머리로, 불면증으로, 역류성식도염으로, 하혈로, 통제할 수 없는 두근거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또라이가 돼서 편한 것들은 정말 많다. (물론 회사엔 엄청난 또라이들이 내재해 있어 나 정도는 어떤 사람 기준엔 또라이축에 끼지 못 할 수도 있지만 내 기준에서 이 정도는 또라이 축에 속한다.) 우선 소시오패스들은 사람을 내가 조종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 행동을 다르게 하곤 하는데, 그 소시오패스들에게 조금 더 나은 대우를 받아 인생이 한결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또라이행동이 나의 경우엔 별로인 행동이었고, 이렇게 해야만 살아남는 이 환경이 고통이었다. 또라이력이 심화되면 외로움이 동반되고, 나같이 소심한 또라이를 시작으로 그게 정답인 것처럼 더 미쳐가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물론 중심 있게 잘 살아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들도 뒷말하는 건 피할 수 없다. 회사 분위기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내 이익을 위해서라도 뒷말에서 얻는 소스는 굉장히 많다. 고로 난 회사라는 조직은 내 기준 별로인 사람을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살며 소시오패스를 피할 순 없지만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그를 매일 봐야 하는 의무가 없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은 회사가 맞지 않다고 판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