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무겁기도 가볍기도 한 잡생각
어김없이 출근을 한 오늘, 어김없이 에어팟을 귀에 꽂고, 노이즈캔슬링 모드를 틀어 고단한 출근길의 질을 최대로 높이려 노력한다. 앞뒤 양옆 옴짝달싹 못하고 한 손은 내 안전을 보장해 줄 버스 손잡이를 잡고, 그나마 남은 한 손의 엄지로 폰을 겨우 터치하며 유튜브를 틀어본다. 녹록지 않은 내 현실을 유튜브가 알아챘던 걸까. 알고리즘이 유학까지 다녀온 고학력자가 다 때려치우고 귀농한 영상을 제시해 준다.
영상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침마다 지옥철에서 모르는 사람의 냄새를 맡으며 주 3회 이상 술을 마시고, 무엇보다 매일 나를 소중히 하지 않는 회사에서 즐겁지 않은 일을 하며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척을 해야 한다면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위장에 구멍이 뚫릴 자신이 있었다.’
…….. 사람들에 끼여 중심을 잡으며 모르는 사람 냄새 맡고 있던 나는 말 그대로 현타가 왔다. 지금 다니는 회사(우리 회사라는 표현을 하기가 싫었다)에 회식은 없지만 금요일까지 버티기 위해 자의적으로 주 3회 술을 마신다. 부장이 날 소중히 하지 않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출근하면 전혀 웃을 수 없는 말에 하하하 소리를 내며 리액션 노동을 할 것이다. 부장한테 기분 나쁜 소리라도 들은 날엔 빈속에 더부룩함을 느낄 것이고, 외부 기관과 점심식사 미팅이 있는 날엔 내 돈 주고는 어쩌다 먹을 수 있는 비싼 음식을 세상 맛없게 먹겠지.
이렇듯 나름의 비교분석 결과, 영상의 이야기와 나의 상황이 약 90% 이상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상황 속에서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보며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가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오늘따라 자꾸만 급정거를 하는 버스 안에서 쉴 틈 없이 무게중심이 흔들리며 내 혼동은 커져갔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에서 나는 누구인가까지의 생각이 정신없이 휘몰아치다 회사에 도착했다.
컴퓨터를 켜고, 에어팟을 귀에서 뺀다. 에어팟으로부터 정제되었던 모든 소음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며 꿈이라도 꿨던 마냥 현실로 복귀한다. 머릿속을 휘감았던 자아정체성 고민은 의식도 못할 사이 사라지고, 부장 자리에 다가가 말한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그리고 내 자리에 돌아가 평소처럼 업무를 시작한다. 오늘도 그렇게 ‘나’에 대한 고민을 망각한 채 현실에 쫓겨 정신없이 K-직장인의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