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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슬 Nov 15. 2024

5화. 강릉 윤슬서림에 다녀왔어요




강릉에 도착했다. 

살면서 가장 많이 가 본 여행지이자 언제 가도 좋은 최고의 여행지. 



비교적 서울과 접근성이 좋아 오고 가는 피로도도 적을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산과 바다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제주도나 부산 바다 보다도 강원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푸르고 깊은, 기개 있는 그 바다가 참 좋다. 



뚜렷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떠나온 이번 여행. 

발길 닿는 대로 다니는 것이 목표였고

맛집에서 줄 서기, 카페 찾아다니기, 관광지에서 사진 찍기 등의 코스는 과감히 생략했다. 

그저 내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순간들을 쫓기로 했다. 



우선 강릉에서 무조건 독립서점을 가고 싶었다. 

나는 사람이 아닌 글에서 위로와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는 사람이라 

지금 나에게는 여행지에서 만난 좋은 책 한 권이 필요했다. 



그래서 강릉 독립서점을 검색 후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윤슬서림"으로 향했다. 

어쩜 책방 이름도 내가 좋아하는 "윤슬"이지? 싶었다. 

이건 마치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온갖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곧잘 운명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곤 하는데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이건 운명이야!"라고 해버리면 내가 굉장히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 느낌이 참 좋다. 

또한 반대로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도 "그래 이건 운명이지"라고 내뱉으면 나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냥 받아들이자 하는 식의 포용적인 태도가 가능해진다. 



윤슬서림을 발견한 것은 이중 좋은 운명 쪽에 가까웠다. 



놀랍게도 서점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실 무인 책방은 처음 봐서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었다. 

사람들은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저마다 읽고 싶은 책을 가져다 읽고 있었고 

서점 곳곳에는 무인서점을 이용하는 방법과 관련된 안내글이 붙어 있었다. 



자세한 안내글 덕분에 무인서점을 이용하는 방법은 크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온기가 느껴지고 아기자기한 책방을 왜 무인으로 운영하시게 된 걸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고

이내 책방지기님의 소개글(?)을 읽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용은 위와 같다.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다른 경제활동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부득이하게 책방은 무인으로 운영 중이라는 것이었다.

"생계유지를 위한 시간"이라는 단어에 뭔가 씁쓸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하면서도 서점을 지키려 하는 서점지기님의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따스해지기도 했다.



서점을 쭉 둘러보는데 순간적으로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그것들을 같이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동시에 그 서점은 나에게 "너도 이렇게 살아도 돼"라는 말을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소리를 조금 더 붙잡고 싶어서 나도 서점 한 구석에 잡았다. 

서점은 서점을 방문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메모들로 가득했는데 나 역시도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연필을 집었다. 



"정신없이 흘러갔던 지난 시간들 속 유독 지쳤던 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친 건 지도 모를 만큼 항상 해야 할 일 투성이었습니다. 인간관계도, 일도, 조금은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겠다고 느끼는 요즘, 문득 들어선 이곳에서 휴식과 여유를 느끼다 갑니다. 사장님은 하고 싶은 일 하시며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사장님의 삶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하지만 공간 곳곳에 드러난 사장님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보며 또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좋아하는 일과 현실의 괴리. 그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일. 과연 그 과정에는 정답이랄 게 있을까요? 우리 모두 그냥 정답도 모른 채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건가 봅니다.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생각할 여유를 주셔서 또 이 생각을 글로 남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간 문장들 속에는 

얼굴도 모르는 서점 사장님의 행복을 바람과 동시에 나의 행복도 바라는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해 있었다. 



포스트잇을 사장님이 보실 법한 적당한 곳에 붙여놓고 나니 한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일로 살아가는 일]. 오수영 작가님의 독립서적이었다. 

이것도 마치 운명이었을까. 하필 이런 제목의 책이 내 눈앞에 보이다니



나는 조금은 홀가불한 마음으로 책을 사 책방 문을 나섰다. 

점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8월의 강릉 바다는 생각보다 좀 더 비릿했다.

바닷바람이 가져다준 시원한 온도 안에는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는 듯한 

묘한 상쾌함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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