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나이 계산법으로 29살인 현재의 난, 아르바이트 5개월 차다.
현실 세계의 통념을 기준으로 뒀을 때, 늦게 출발한 편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내 판단의 기준으로는 마냥 늦은 것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신경 써야 할 많은 현실적인 것들은 놓쳤지만, 남들은 관심조차 주지 않을 근본적인 가치를 깨우치고 출발했기에 오히려 든든하다.
많은 이들이 바로 달리기를 시작할 동안, 난 바닥에 앉아서 나만의 신발을 만들어 신은 느낌.
당장에는 이 신발이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다.
신발을 신지 않은 이보다 발이 더 무거워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험난한 곳에 갈 수 있게 된 것일 수도 있고 그들보다 더 멀리, 더 빨리 갈 수 있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간, 늦지 않을 시기에 마주하게 될 친절하지 않은 바닥 위를 걷게 될 그 순간, 이 신발이 빛을 발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 혼자만의 세계에 깊이 빠져있던 그 10년간 진심으로 지냈었다.
내가 추구하던 게 정답이 아니었을 순 있어도 추구하던 그 움직임은 전력이었다.
내 모든 것을 걸었던 전력이자 내 모든 것이 걸려있던 진심이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도 깎여나가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타인의 동요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무겁다.
관성.
그 시절에서 벗어난 지금에서도 그 시절의 영향은 계속된다.
내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회상하고 되새기며 감회가 새로운 기억을 우려낸다.
그처럼 그 10년은 내 평생동안 끝없이 우러날 내 굵은 뿌리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반동.
난 그 시절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옳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옳음을 통과한 경험치는 흡수하되 내 그름에 걸린 경험치는 단순히 잊어버리는 게 아닌, 한쪽 구석의 벽면에 박제하여 기억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것을 다짐한다.
그렇게 오늘날의 내가 나는 되었고 언젠가 난 내가 원하는 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