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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팅 앱 사용자 Sep 19. 2024

피렌체 대학 다 미워!

편지 11. 9월 26일

언니에게

며칠 전엔 기분이 좀 안 좋았어. 내가 계속 학생증 신청, 수강 신청 어려워하고 그랬잖아. 유럽 대학엔 EU 교환학생들을 위한 에라스무스(Erasmus)라는 시스템이 있어. 그래서 보통 여기선 exchange student라는 단어보다는 erasmus를 더 많이 사용해. 학교 관계자도 날 보면 ‘Are you erasmus?’ 라고 많이 물어봐. 처음엔 에라스무스가 뭔지 몰라서 난 항상 ‘No, I am exchange student’라고 대답했지. 알고 보니 유럽에서 온 교환학생들은 에라스무스 시스템이 있어서 학생들을 엄청 잘 관리해 주는 거야! 영어수업 목록 표도 주고 학생증도 2일 만에 나오고 다양한 모임도 개최해주고. 난 영어 수업 목록 홈페이지에서 찾느라 눈알 빠지는 줄 알았는데! 학교에서는 비유럽권에서 온 학생은 에라스무스 부서가 아닌 교환학생 부서에서 따로 관리해주고 있어. 그런데 교환학생 부서는 에라스무스 부서보다 훨씬 규모도 작고 시스템도 엉망이야. 모든 게 느리고 엉성해. 학교 사람들은 비유럽권 교환학생에 대해 잘 몰라 우리가 뭘 물어보려고 찾아가기만 하면 자기 관할이 아니라며 다른 부서로 보내려고만 해. 어쨌든 다 같은 교환학생인데 국적이 아시아라는 이유로 비유럽권 학생은 더 고생하고 있어. 물론 EU 국가 간의 학생 교류가 아시아에 비해 무척 활발하고 규모도 크지만 그래도 서러워.



무엇보다 내가 분노의 정점을 찍은 건 피렌체 대학교 어학당 CLA 때문이야. 그래서 CLA에 수업 신청 이메일을 보내니 답장이 '너 erasmus 도 아니고 한국에서 온 학생이어서 수강받아주기가 좀 그렇다'이렇게 온 거야. 이때 정말 이걸 읽자마자 혈압이 치솟는 게 느껴졌어. 더 웃긴 건 나랑 같은 메일을 보낸 식원 오빠한테는 레벨 테스트 보러 오라고 했더라고. 뭐야?! 장난해? 난 화가 나서 '나도 교환학생으로 erasmus처럼 수업 등록할 권리도 있고 이런 메일 받아서 기분 나쁘다'라고 보냈어. 또 답장이 왔는데 '아니 뭐 네가 등록을 못하는 건 아닌데, 국제협력처랑 우리 부서랑 좀 말을 해봐야 할 거 같아'이렇게 왔어. CLA 등록 안 하려고. 이탈리아어 때려치워. 다 미워……



학교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니까 힘 빠지고 서글펐어. 외국에서 생활할 때 학생이면 학교라는 울타리가 있어 더 안정감을 느낀다는데, 오히려 난 학교가 날 마구 짓밟는 느낌이야. 속상해서 친구한테 이런저런 하소연했는데, 그 친구도 호주로 워홀을 다녀와 내 심정을 잘 알더라고. 워홀은 소속된 학교마저 없어서 더 힘들 때도 많으니 힘내고 지금 가진 기회를 잘 활용하라고 다독여 줬어. 맞아 찡찡거리고만 있을 순 없지. 힘을 내야지. 힘이 없고 무력할 땐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지. 


-은경이가


P.S 

오늘따라 날씨가 정말 좋아 시내로 나갔는데 빨간 두오모의 둥근 돔과 하늘의 조화가 아름다웠어. 하얀 대리석이 돔 사이를 가르고 지나가 위에서 보면 마치 꽃 같다고 하여 피렌체 두오모 이름은 꽃의 성모 교회야. 내가 보기엔 꼭 둥근 레드벨벳 케이크를 조각조각 잘라 생크림을 듬뿍 발라 다시 붙여놓은 거 같아. 하얀 대리석은 삐져나온 생크림이지. 난 정말 단것을 좋아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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