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선택은 가능할까?
내가 미국에 이민 온 지 벌써 20년도 더 되었다. 일곱 살, 열두 살이던 내 아이들도 이제 벌써 스물아홉, 서른넷의 성인이 되어 독립한 지 오래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어린아이 둘만 데리고 무작정 난 할 수 있어하며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간호사 취업 알선 회사의 사장님이 나와 아이들을 맞아 주셨다. 사장님은 우리를 재팬타워에 있는 한국 식당에 데려가 저녁을 사주시고 내가 예약했던 호텔에 데려다주셨다. 그다음부터 완전히 홀로서기 혹은 홀로 기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일주일 후부터 영어 연수를 시작해야 했고 그전에 주거지를 정하고 아이들을 보낼 학교를 정해야 했다. 그 당시 미국의 학교 시스템에 대해 내가 아는 건 '미국 환상 깨기' 이영돈 지음-에서 읽은 게 전부였고 그분이 경험한 건 캘리포니아의 학교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그렇게 나의 미국 환상 깨기는 시작되었다.
어찌어찌 아파트를 구해 5일 만에 우리는 호텔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버클리 동쪽 주택가에 있는 작은 삼층짜리 아파트였다. 다음날 나는 아파트 계약서와 나의 학교 등록 서류, F2 비자가 찍힌 아이들의 여권을 들고 버클리 교육청을 찾아갔다. 나의 계획은 6월에 시작하는 여름 방학에 맞춰 6 월 전에만 가면 아이들을 여름학교에 보내, 영어도 익숙해져야 하니 정규 학교 전 여름학교에서 학교 생활을 시작하자는 야무진 것이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학교 점수 평판들을 검색하고 동네 범죄율 들을 미리 조사하고 아이들을 보낼 학교까지의 거리까지 따져서 뽑은 아파트였고 학교였다.
지금도 교육청에서 우리를 맞아 준 젊은 백인 남자가 생각난다. 여름학교는 갈 수 없다고 했다. 여름학교는 이미 몇 달 전에 신청이 마감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웅얼거리는 영어를 이해할 수 없어 수 없이 되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필답으로 대화했다면 쓰인 영어가 들리는 영어보다 익숙했던 나에겐 훨씬 쉬웠을 것이다.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즉석에서 통역할 수 있으니 나 같은 곤란을 겪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가 설명하는 모든 상황이 예상 밖이어서 더욱 상황을 악화시켰다. 아이들 학교도 교육청에서 다 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가서 등록해야 한다고 했다. 큰 아이가 갈 중학교는 내가 선택한 학교가 영어학습자학교여서 등록이 되었는데 작은 아이가 갈 걸로 기대했던 학교는 빈자리가 없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중학교부터는 English Learner들이 가야 하는 학교를 교육청마다 한 곳을 지정해서 미국에 새로 온 이민자는 무조건 그 학교를 가야 했다. 작은 아이의 학교는 나보고 집 근처의 학교마다 가서 받아 줄 수 있나 알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방학이라 학교들은 다 문을 닫았고 사람들이 여름동안 이사를 하기 때문에 새 학기에 빈자리가 있을지 여부는 새 학기 등록이 시작되어야 알 수 있었다. 우선 나는 다음 주부터 영어연수 학교를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다녀야 해서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미국에서는 12살 이하의 아이들을 보호자 없이 두면 아이들을 사회보장국에 뺏기고 보호자는 감옥 간다 등의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어 정말 무섭고 암담했다. 그때 한국식품마켓에서 가져온 전화번호부 책의 한국학교 광고가 우리를 구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그 해 여름을 한국말을 배우는 한국학교-사설 종일반 여름학교에서 최우수 학생 대접을 받으며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새 학기 등록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간신히 둘째 아이를 보낼 수 있는 학교를 찾아내었다. 집 앞의 학교는 빈자리가 없었다. 둘째 아이를 받아준 학교는 버클리의 동북쪽 언덕에 위치했고 자동차로 등하교를 시킬 수밖에 없는 거리여서 그렇게 나의 등하교 운전은 시작되었고 그 후 아이가 운전할 수 있는 나이, 16살이 될 때까지의 등하교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교통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쓰기로 하고 여기서는 생략하자.
내가 취업을 하여 새크라맨토로 이사를 왔을 때 학교 입학하기는 또다시 난관을 겪었다. 큰아이는 English learner class가 있는 학교로 무조건 배정받았고 작은 아이학교는 다시 내가 집 계약서를 들고 여러 학교를 찾아다녀야 했다.
캘리포니아의 공립초등학교는 한 교실당 23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그 수를 초과해서 학생을 받지 않는다. 미국 전체는 그 비율이 17명이라고 하는데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는 교육 여건이 훨씬 열악하다. 예산이 미국 동부의 학생당 예산보다 훨씬 적다. 지금 찾아보니 학생 한 명당 정부 지원금이 일 년에 13,335달러라고 나온다. 학교는 그 돈으로 건물 유지 관리비, 인건비와 교재비를 충당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기 초에 학부모들은 공책 연필 가방 심지어 휴지 등등을 기증하는 것이 전통이다. 지금 트럼프정부는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한다고 난리지만 많은 캘리포니아 도시들은 민주당 정권이 관리하고 있어 불법 이민자의 자녀들도 얼마든지 학교에 다닐 수 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집 근처의 학교에 자리가 없으면 대기자로 신청할 수 있다. 자리가 생기면 연락해 준다.
제대로 된 English Learner class를 제공하는 것은 아마 큰 비용이 들 것이다. 작은아이의 경우 초등학교 2-3학년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서너 명의 학생들을 모아 놓고 영어 단어를 가르치는 특별반에 가긴 했다. 늘 하는 것도 아니고 거길 가려면 정규 수업을 빠지는 것이어서 선생님도 여력이 없었고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방금 전화해서 그 클래스에 대해 물어보니 둘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도 영어라고는 굿모닝도 못하던 둘째는 일 년이 지나자 더 이상 식이 아니라 문장으로 나오는 수학 문제도 다 맞힐 수 있게 되었다. 미국 학교에 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수학 시험지에 서술형 질문 밑에 아이는 험한 욕을 한글로 써 놓았는데 선생님이 한글을 아는 자기 친구에게 영어로 번역해 달라고 할 계획이라고 해서 내가 해 주겠다며 진땀 뺐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제를 읽지 못해 답을 쓰지 못할 때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하면 그리 욕을 써놓았을까 하는 건 지금 드는 생각이지 그땐 정말 어쩔 줄 몰랐다. 중학생이었던 큰 아인 몇 달 English learner class level의 영어 수업을 들어야 했고 이년 후 둘 다 교육청에 가서 영어시험을 보고 English learner 꼬리표를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