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Wi-Fi가 끊기면 나도 멈춘다

우당탕탕 나 홀로 산티아고, 에피소드3

by 아주nice

1-3. Wi-Fi가 끊기면 나도 멈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건, 길을 걷는 게 아니었다. 인터넷이 끊기는 상황이었다. 스페인어도 못하고,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 나에게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인터넷, 인터넷이 연결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구글 번역기, 길찾기 앱, 예약 사이트 같은 디지털 도구들뿐이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했다. 한국에서부터 로밍 데이터를 24기가 충전해왔다. 길 한복판에서도 앱을 켜고 번역하고, 지도를 보고, 연락하고, 숙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초등학교 시절, 커다란 컴퓨터가 처음 교실에 들어온 세대를 살았다. 그 시절엔 도서관에서 책을 뒤지고, 종이 지도를 펴 길을 찾았지만, 지금 세상은 바뀌었다. 이젠 모든 게 스마트폰 속에서 벌어진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그 흐름을 어떻게든 따라잡아야 했다.

어느 날, 길찾기 앱을 켜서 깜빡거리는 초록점을 따라 안내 방향으로 길을 걷게해주는 친절한 앱이었지만 문제는 그 점이 나한테는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가 북쪽인지 지금 걷는 방향이 맞는지 헷갈려서 앱을 켰다 돌리고, 다시 한 바퀴 빙 돈 다음에야 겨우 방향을 알아차리곤 했다.

이뿐 아니라 숙소 예약에 관한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Booking.com으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는데 문이 잠겨 있었고, 호스트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1시간 넘게 문 앞에 서서 추위에 떨며 기다렸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 스페인어로 메시지를 보내고, 영어로도 다시 시도하고, 왓츠앱으로 내가 이미 도착했다고 연락도 해봤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결국 한국 번호로 Booking.com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한국 직원이 내 문제를 도와 해결해주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IT를 더 잘 다뤘다면,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었던 일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이 모든 걸 결국 나 혼자 해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눈동자만 굴려도 버튼이 어디 있는지, ‘삼선 버튼’이 뭔지, 화면 중앙이라는 게 어디인지 단박에 알아채지만, 나는 하나하나 찾아보고, 눌러보고, 확인해가며 익힌다. 이렇게 배우는 것도 내겐 또 하나의 도전이고 성장이다. 처음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안하고, 자꾸 헤매지만, 어느새 나도 길을 찾고, 예약을 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내고 있었다. 영어도 못하고, 스페인어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다.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해내고 있다. 그렇게, 디지털 생존기 앞에 굴복하지 않고 말이다.

keyword
이전 02화동키서비스, 내 짐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