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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부터 베낭을 놓고 오다

우당탕탕 나 홀로 산티아고, 에피소드1

by 아주nice

1-1. 출발부터 베낭을 놓고 오다


출발 전에는 자신만만했다. 5년이나 준비했으니, 나만큼 철저하게 계획한 사람도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도 막상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슬금슬금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잘 준비한 게 맞을까?’ ‘혹시 바꿔놓은 유로가 없어지면 어떡하지?’ ‘짐은 제대로 챙긴 걸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에 마지막으로 ‘혹시 몰라’ 챙겨야 할 게 있나 싶어 면세점 주변을 서성이다가 작은 허리 지갑과 접이식 작은 배낭을 구입했다. 허리 안쪽에 딱 붙는 그 지갑에는 환전해 놓은 유로와 여권까지 넣었다. 몸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한결 든든해졌고, 초경량 접이식 배낭은 짐 이동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몸에 멜 수 있는 작은 가방으로 챙긴 것이었다. 그런데 그 배낭이 그렇게 큰 사건이 될 줄이야.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 들뜬 마음으로 새로산 접이식 배낭을 펼쳐 이것저것 넣어보았고, 큰 배낭 하나, 작은 배낭 하나를 멘 채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14시간 반의 비행을 마치고 프랑스 국내선으로 바욘–비아리츠 공항까지 이동해야 했는데, 공항 검색대를 지나기 위해 두 개의 배낭을 모두 벗어 올려두고, 옷도 벗고, 휴대폰도 내려놓고, 모자까지 내려놓았다. 검사대를 무사히 통과한 뒤 큰 배낭 하나만 다시 메고 출발 게이트로 향했고,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있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작은 배낭은… 어디 갔지?’ 순간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 안에는 접이식 가방뿐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한 경량 키보드, 귀중품, 중요한 소지품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도 인천도 아닌, 프랑스 공항에서. 머릿속이 하얘졌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래서 내가 달리기를 배웠나?’ 거의 킵초처럼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검색대 쪽으로 날아가듯 뛰어갔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그렇게 도착한 검색대, 거기, 내 가방이 조용히… 검색대 옆에 떨렁 놓여 있었다. 그 순간의 안도감은 말로 다 표현이 안 됐다. 마치 가방을 다시 만난 게 아니라, 내 정신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출발하자마자 이런 일이 생기다니. 그래도, 가방을 되찾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시작이구나.’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은 처음부터 나를 조용히 시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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