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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키서비스, 내 짐이 사라졌다

우당탕탕 나 홀로 산티아고 에피소드2

by 아주nice


1-2. 동키서비스, 내 짐이 사라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에게 짐 이동 서비스는 꽤 중요한 존재다. ‘동키 서비스’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은 하루 전날 예약만 잘하면 내가 묵었던 숙소에서 다음 숙소까지 가방을 깔끔하게 배송해주는, 말 그대로 순례길의 효자 같은 존재다. 처음엔 너무 간단해 보였다. 전용 봉투에 이름, 숙소 정보, 목적지, 전화번호 등을 적고 6~7유로 정도의 현금을 넣은 뒤, 가방에 전용 봉투를 고무줄로 묶어 사진을 찍어 업체에 전송하면 끝. 그날 오전 8시까지 숙소 앞에 두기만 하면, 저녁엔 순례길 끝의 다음 숙소에서 내 가방을 다시 만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첫날부터 일이 꼬였다. 10km쯤 걸었을 무렵, 왓츠앱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너의 가방은 배달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가방을 배송했고, 네 가방은 여기에 남겨두었다. 왜냐면 너는 ‘전날 인터넷 예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사진도 보냈고, 봉투도 작성했고, 돈도 넣었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번역기를 돌려가며 따져 묻자,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그건 단지 ‘표식용’일 뿐입니다. 예약은 반드시 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10km나 걸어온 상황에서 정신이 아찔했다. 다시 돌아갈까? 가방 없이 하루를 버틸 수 있을까? 포기하고 싶지 않아 다시 번역기를 켜 들었다. “나는 이 서비스를 처음 써보는 초보 순례자입니다. 내일부터는 꼭 인터넷으로 예약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만 도와주세요.” 간절함이 전해졌을까. 잠시 후, “이번 한 번은 도와드릴게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스스로 예약하셔야 합니다.”라는 답장이 도착했다. 그 순간, 문자 메시지를 열두 번쯤 다시 읽으며 ‘감사합니다’를 속으로 수십 번 외쳤다. 작은 것 하나 넘겼을 뿐인데, 마치 큰 벽 하나를 돌파한 기분이었다.

다음 날, 스스로 예약을 시도했다. 이름, 날짜, 목적지, 결제 카드 정보까지 다 입력하고 결제 버튼을 눌렀는데, 화면이 다시 초기화됐다. 또다시 입력하고 클릭, 또 클릭… 그렇게 무려 20번쯤 반복했다. 하늘엔 비 예보까지 있었고, 이제 포기하고 가방을 메고 걸어야 하나 싶던 찰나, 업체에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사이트에서 예약을 완료했는데, 결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행히 담당자가 직접 결제 링크를 보내주었고, 그제야 겨우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시스템 속에선 하나하나가 큰 도전이었다. 동시에, 작지만 값진 승리이기도 했다. 드디어 예약도 잘했고, 숙소 도착도 문제없이 마무리됐구나 싶었는데… 또다시 일이 벌어졌다. 숙소에 도착했는데 가방이 없는 것. 숙소 주인은 “우리 책임 아니다. 업체에 직접 연락해봐라. 대신 전화는 해줄게.”라고 했다. 업체에 연락하니, 내 짐은 현재 숙소에서 도보 2분 거리의 다른 숙소에 잘못 배송되어 있었다. 그곳으로 달려가니, 다행히 가방이 안전하게 보관 중이었다. 가방을 안고 “우리 집에 가자”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 웃음이 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과정이 처음엔 스트레스였지만 이제는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나하나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점점 혼자서도 잘하는 순례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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