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나 홀로 산티아고 에피소드7
1-7. 알베르게 로또 -오늘은 어디서 자나
순례길을 걸으며 매일같이 바뀌는 숙소에 적응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도전이었다. 한국에서의 상식으로는 도미토리 룸이라면 남녀가 구분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곳의 순례자 숙소는 그와는 전혀 달랐다. 남녀 혼용 12인실이 일반적이었고, 그것도 예약 없이 도착 순으로 입실하는 경우가 많아 늘 ‘오늘은 어디서 자나?’가 하루의 마지막 고민거리였다.
특히 도착 시간이 늦어질수록 1층 침대는 이미 다 나가고, 남은 건 꼭대기 2층 침대뿐. 키도 작고 다리도 짧은 나는 그 높은 2층 침대를 오르내리는 것조차 하루 운동의 연장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쩔쩔매며 오르고,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또 내려와야 하니, 하루 종일 걸은 다리에겐 고역이었다.
공립 알베르게에서는 침대 옆에 콘센트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휴대폰 충전을 하려면 복도에 나가야 했고, 사람이 많은 시간대엔 콘센트 자리를 차지하기도 어려웠다. 충전 중 분실이 걱정돼 그냥 포기하고 자는 날도 있었고, 덕분에 다음 날은 남들보다 1시간 더 일찍 일어나 걷기 시작한 적도 있다.
샤워실도 마찬가지였다. 사물함이 따로 없는 구조에서는 벗은 옷을 어디에 둘지, 마른 옷은 어떻게 젖지 않게 지킬지가 늘 고민이었다. 수건을 깜빡하고 들어가 애를 먹기도 했고, 입으려던 옷이 샤워기에 젖어 있는 걸 보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렇다고 비싼 숙소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한 번은 도미토리 대신 2인용 프라이빗 룸을 선택했는데, 깨끗하고 조용한 건 좋았지만, 주방도 없고 식당도 없어 결국 외출해서 밥을 사 먹어야 했다. 물을 끓일 주전자 하나 없다는 사실에 아침에 커피 한 잔 마시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혼자 자는 게 편할 줄 알았는데, 이게 더 불편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짜 ‘숙소 로또’란, 도미토리라 하더라도 1층 침대를 배정받고, 청결을 위해 1회용 침구 커버가 제공되고, 샤워 타월까지 대여할 수 있으며, 콘센트가 침대 옆에 딱 붙어 있고, 침대마다 커튼이 쳐져 있어 사생활 보호까지 되는 그런 알베르게였다. 게다가 각자의 생활 리듬에 맞춰 침대 안쪽 조명을 따로 켜고 끌 수 있다면, 그날은 말 그대로 로또 당첨인 셈이었다.
하루 6시간에서 8시간씩 걸은 뒤, 그런 숙소에 들어가는 날이면 온몸이 풀리며 세상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의 걷기가 아무리 힘들었어도, 숙소 하나로 모든 게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반대로 숙소 환경이 열악한 날은, 걷기보다 더 고된 하루가 또다시 시작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매일 밤, 나는 같은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내일은 어디서 자게 될까?’ 그 작은 기대가 순례자의 하루를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