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나 홀로 산티아고, 에피소드6
1-6. 플랫폼은 어디? 기차 대신 버스라니!
순례길 출발을 앞두고, 나는 프랑스 생장피드포르(Saint-Jean-Pied-de-Port)라는 조그만 마을로 향해야 했다. 프랑스길, 이른바 ‘카미노 프란세스’의 시작점이자 많은 순례자들이 걷기를 시작하는 첫 마을이다. 나는 미리 오미오(Omio) 앱을 통해 바이리츠(Biarritz)에서 생장까지 가는 기차표를 예약해 두었고, 이제는 시간만 맞춰 기차역으로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바이리츠 기차역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쯤. 내가 예매한 기차는 오후 1시 출발이었고, 전광판에 안내된 플랫폼은 1번이었다. 출발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그래서 플랫폼 1번에 서서 캐리어와 배낭을 발 옆에 놓고, 긴장과 기대 사이를 오가며 기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12시 55분, 12시 58분… 그리고 1시가 되었다. 기차가 도착할 기미는 없었고, 전광판에도 내가 탈 기차의 정보는 나타나지 않았다.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혹시 플랫폼이 바뀐 걸까?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걸까?’
다급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던 중, 같은 플랫폼에 서 있던 스페인 학생이 눈에 띄었다. 용기를 내어 구글 번역기를 켜고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이 기차가 오지 않아요. 혹시 어디 플랫폼으로 가야 하는지 아시나요?”
그 학생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지만, 문제는 그 말이 스페인어였다는 것. 나는 그 말의 반의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기차 출발 예정 시각은 이미 지나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그 순간, 플랫폼 바깥쪽에서 누군가 손짓을 했다. 낯선 사람이었지만, 배낭을 멘 모습이 딱 봐도 순례자였다. 그는 마치 ‘거기서 나와요’라고 말하듯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순간 망설였지만, 여기서 기차가 오지 않기를 기다리는 것보단 저 사람을 따라가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얼떨결에 그의 손짓을 따라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기차역 앞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커다란 관광버스처럼 생긴 차량이 한 대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배낭을 멘 사람들이 그 버스 아래 짐칸에 배낭을 실고,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기차표를 꺼내 사람들에게 물었다.
“저… 이 기차표를 끊었는데, 이 버스를 타도 되나요?”
그러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Yes, yes!”
나는 ‘정말 맞는 건가…?’ 하는 반신반의 속에 짐을 버스에 실고 올라탔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다가, 반가운 한국인을 발견했다.
“저기요, 혹시 생장 가세요?”
내가 묻자, 그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저도 그래요. 여기 기차 자주 안 다니면 버스로 대체된대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기차표를 들고 버스를 탄 건 처음이었지만, 낯선 땅에서 그런 식으로 순례자들이 연결되어 간다는 게 오히려 감동이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따뜻한 햇살이 차창 너머로 스며들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창밖을 보았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게 오늘의 기차구나.’
프랑스 시골길의 풍경을 감상하며, 기차 대신 버스를 타고, 낯선 사람의 손짓을 따라, 결국 생장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순례길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우당탕탕이었다. 하지만 그 우당탕이야말로, 이 여행의 진짜 매력이라는 걸 점점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