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나 홀로 산티아고, 에피소드8
1-8. 사계절을 하루 만에- 인스타로 생존 신고
순례길 25일차 총 35km를 7시간 30분을 걷는 동안 사계절을 통째로 경험했다. 그날은 단연코 순례길 중 가장 힘든 날이었다. 날씨도, 길도, 숙소도, 몸 상태도… 어느 하나 순탄하지 않았다.
출발은 베가 델 발카르세(Vega de Valcarce)에서였다. 아침의 숲은 초록이 가득했고, 나뭇잎 사이로 부는 바람은 싱그러운 봄의 향을 실어 나르듯 코끝을 스쳤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아, 이런 날은 아무리 걸어도 힘들지 않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날씨는 여름처럼 뜨거워졌다. 걷다 보니 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결국 입고 있던 바람막이와 경량 조끼를 벗어 배낭에 말아 넣었다. 햇볕이 정수리를 찌르는 듯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계절이 하루 안에 바뀐다니, 이 정도 변화는 즐길 만했다.
그런데 문제는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까지 이어지는 오르막이었다. 11km 넘게 꾸준히 상승하는 경사는 숨이 턱턱 막혔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위로 눈이 쌓인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저기까지 가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설마는 현실이 되었고, 눈밭은 어느새 내 발아래 있었다.
미끄러운 눈길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고, 앞을 가로막는 짙은 안개는 5미터 앞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가뜩이나 축축하고 미끄러운 길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걷는 일은 고문에 가까웠다. 혹시 이러다 조난이라도 당하는 게 아닐까 싶은 공포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본능처럼 휴대폰을 꺼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켰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마지막 위치라도 남기자.” 조난 신고 아닌 조난 신고였다. 가볍게 사진을 올리고, 현재 위치를 태그해두는 그 단순한 행동이 그날 나를 안심시켜 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행히도 길은 이어졌고, 그 후로 3~4km를 더 걸어가니 또다시 믿기지 않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봄처럼 푸르고 평화로운 산과 들판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초록 잎이 반짝이고, 따뜻한 햇살이 등 뒤로 내려앉았다. 세상에… 진짜 하루 만에 사계절을 통과한 셈이었다.
걷는 동안 내내 생각했다. ‘이게 바로 순례길의 맛이구나.’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 자연은 매 순간 놀라운 방식으로 나를 시험하고 감동시켰다. 봄의 설렘, 여름의 열기, 겨울의 공포, 그리고 다시 찾아온 평화로운 가을 같은 감정까지. 이날 하루로 사계절은 물론, 인생의 축약판을 경험한 듯했다.
그리고 그날 밤,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 살았다, 아니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