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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사수를 위한 5만원 투자

우당탕탕 나 홀로 산티아고, 에피소드9

by 아주nice

1-9. 다이어리 사수를 위한 5만원 투자


매일 밤 다이어리를 쓴다. 이름하여 ‘독서의 기록 다이어리’. 하루 동안 한 일, 읽은 책, 감사했던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 그리고 세부 실행 계획까지—그날 하루의 인생이 그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작고 가벼운 3개월짜리 다이어리는 한국 돈으로 만 원이면 충분하다. 한 달에 사천 원꼴도 안 되는 그 얇은 노트. 하지만 내게 그건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그날도 하루를 마치고 평소처럼 다이어리를 꺼내려다 말았다. 도미토리 방의 어르신들이 일찍 잠들어 있었고, 가방을 뒤적이는 작은 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아침 일찍 쓰려고 가방 대신 베개 밑에 다이어리를 살짝 넣어두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다음 날, 33km를 걷고 7시간 넘게 걸어 도착한 숙소에서 다이어리를 꺼내려던 순간—없었다. 아무리 뒤져봐도, 다이어리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발은 타는 듯 아픈데, 마음은 더 무거웠다. 그 노트를 되찾기 위해 지금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혹시 청소하시는 분이 버리지는 않았을까? 그 다이어리는 이제 영영 못 찾는 걸까? 깊은 숨을 한번 들이마신 뒤, 내가 늘 해오던 방식대로 하나씩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Booking.com을 열어 전날 묵었던 숙소를 찾아 메시지를 남기고, 왓츠앱으로 연결된 전화번호를 뒤져 전화를 걸었다. “어제 머문 한국인 나영인데요. 혹시 제 다이어리가 있나요?” 잠시 후, 돌아온 대답. “네, 있어요. 하지만 직접 가지러 오셔야 합니다.” 아… 그 숙소는 오늘 걸어온 길 저 너머, 다시 도보로 가려면 7시간 이상, 택시를 부르면 70유로(한국돈 10만원)가 드는 거리였다. 순간 머리를 스친 생각—‘동키 서비스!’ 짐을 숙소에서 숙소로 옮겨주는 동키 서비스를 활용할 수는 없을까? “혹시, 다이어리 한 권도 짐처럼 배송해줄 수 있나요?” 라고 짐 이동 서비스 업체에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고, 다행히도 답이 왔다. “거리 계산 기준으로, 30유로입니다.” 한국 돈으로 약 5만 원. 고작 한 달에 사천 원도 안 되는 노트를 지키기 위해 써야 하는 돈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하루 하루의 기록, 아이디어, 감사, 그리고 내 삶의 설계도가 담겨 있다.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내 시간, 내 흔적, 내 삶의 조각들이었다. 바로 요청을 마치고, 다음 숙소에도 미리 연락을 넣었다. “내일, 작은 다이어리 하나가 도착할 거예요. 꼭 받아주세요.” 문제는 해결됐다. 다이어리를 잃어버렸고, 되찾았고, 그 과정에서 또 한 번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었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닐까.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그 속에서 훨씬 더 큰 배움을 안겨주는 것. 그날 나는 만 원짜리 노트를 지키기 위해 5만 원을 썼고, 그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었다. 기록은 남았고, 내 마음도 지켜냈으며, 그 하루 또한 다시 쓰는 다이어리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렇게 오늘도, 한 걸음 더 성장한 하루를 살아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또 한 번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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