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 신행 갈 나이, 엄마와 유럽행

by 장소연

2023년 유난히 지쳤던 3월 어디로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었다. 전 세계인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코로나 19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해였고 많은 사람들이 참았던 마음을 담아 보복 여행을 떠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매일매일을 똑같이 굴러가는 일상에 질려 비행기 표를 사지 않고서는 못 견딜 것 같던 그날 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 유럽에 갈까?”


2023년 나는 올해로 서른둘, 엄마는 올해로 환갑이 되었다. 여름쯤 엄마가 정년퇴직을 하시고 나면 기념으로 여행을 다녀올 참이었다. 물론 그게 유럽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딸내미의 제안에 엄마는 우선 난색을 표했다.


“갑자기? 언제?”

“추석에, 그럼 나도 휴가 별로 안 써도 되고 그리고 엄마 퇴직하고 나면 원래 어디 가기로 했으니까.”

“추석에? 어휴 그래도 추석엔 제사도 있고, 산소도 가야 되고”


매년 TV에 명절을 맞이하여 인천 공항이 붐빈다는 뉴스가 나오면 당신 빼고 다들 명절에 놀러 간다고 부러워했으면서. 옛날 사람인 엄마에게 정작 명절에 해외여행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유럽은 너무 돈도 많이 들고”


아니 어쩌면 이게 본론이었는지도. 이럴 때 능력이 넘쳐서 유럽 여행비용 쯤은 턱턱 내 놓는 딸이면 참 좋았을 텐데. 하지만 나 역시 혼자 서울에서 근근이 먹고 사는 처지인지라 살짝 주눅이 들었다.


“원래 엄마가 퇴직 턱 낸다고 했었잖아, 내 여행 경비는 내가 낼게. 그럼 똑같지?”

“아니 그래도... 그럼 좀 고민 좀 해볼게”


반쯤은 넘어온 것 같은 엄마의 대답에, 나는 쐐기를 박기로 했다.


“엄마, 이렇게 긴 여행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야 돼. 한 해 한 해 가 다르잖아. 엄마도 나도.”


진심으로. 솔직히 말하면 엄마보다도 나를 더 대변하는 말이었다. 한 해 한 해가 체력이 다름을 느끼는 30대 직장인. 나한테도 엄마를 모시고 멀리 장기 여행을 떠나는 일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야 하는 일이 분명했다.


그러나 엄마는 나의 마지막 전언을 들은 후에도 끝끝내 어떤 결정도 하지 못했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유럽여행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당연히 승낙을 받을 줄만 알았던 나는 조금 기운이 빠졌다. 역시 나의 다음 유럽은 언제가 될지도 모를 신혼여행 때이려나. 웃픈 마음으로 일상에 복귀하고 며칠 뒤,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래, 가자.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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