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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같은 시간

by 희수공원

"준하가 돌아왔어."

"그래? 언제?"

"한 달쯤 전에. 지난주에 우연히 만났어."

"우연히? 너희 둘은 참 신기하다. 학교 다닐 때도 우연히 만났다고 그러더니, 몇 년이나 된 거지? 준하가 떠난 지 6년쯤이지? 그런데 또 우연히 만난 거네. 하하하, 너희들은 우연한 관계인가 보다."


웃어넘기려 조금은 과장된 밝은 표정으로 맞대꾸를 하고 이내 돌아섰다. 준하가 돌아왔다고?


"6년 전 모습이랑 거의 같아서 깜짝 놀랐어. 우리 같이 공항에 배웅했잖아, 너도 기억나지?"

"응, 뭐 차갑고 냉정하고 딴에는 친구들을 떠나 슬프답시고..."

"그때 걔 표정이 떠나면 영영 안 올 것 같이 아쉬운 얼굴을 하고는 우리 한 명씩 안아줬었잖아. 그때 그 표정이 그냥 있더라고. 짜식, 세상 구경 많이 하고 돌아왔겠지."


친구로서의 흥분인가. 6년 만의 재회를 저렇게 반가워하며 흥분된 표정으로 말할 수 있다는 건 준하가 좋은 사람, 좋은 친구였다는 의미인 건가. 희서는 괜히 둘 사이를 오랜만에 질투하고 있었다. 대학 때처럼.


"곧 셋이 한번 보자. 외국계 의류 회사에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더라."

"응."




대학 3학년의 세계는 그야말로 자신감과 오만함이 넘치는 시기였다. 세상에 콧방귀 뀌며 무엇이든 해결되지 않을 것 없는 스스로의 완벽한 세계에 갇혀있던 시간들, 4학년이 취업 준비로 대학원 고민으로 바쁜 시기여서 세상과 괴리된 생활을 하니, 사실 대학에서 3학년들은 학교의 들뜬 분위기를 주름잡는 실세였다고나 할까.


해마다 학교에서는 동아리 홍보 마당을 지원했다. 거기 독서토론동아리에서 그 둘이 만났다. 3학년인 준하는 꽤 노련하게 동아리 운영을 하면서 회장을 맡고 있었고, 동후는 신입생이었다. 삼수를 해서 원하는 과에 들어와 슬슬 대학 생활을 즐겨볼 때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동아리 홍보 마당이 열렸다.


이공계 학생의 인문학적 갈증을 독서와 토론으로 풀 수 있겠다 생각했는지 가입신청서를 쓰는데 준하가 이름을 흘깃 보고는 말을 붙였다 했다.


"혹시 현암초등학교... 졸업하지 않았어요?"

"아, 네, 맞아요."

"21기시죠?"

"네."

"나 준하! 동후, 동후 맞는구나! 이게 몇 년 만이야! 너 전교 회장이었잖아, 6학년 때"

"어.. 그 같은 반이던 준... 하...?"


동후가 왜 자기와 같은 3학년이 아니라 신입생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동후를 여전히 멋진 녀석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 드디어 재회를 했다는 것에 감격한 준하였다. 3학년과 1학년 신입생이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었던 거였다.


둘은 누가 봐도 절친이었다.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지내온 오랜 친구처럼 붙어 다녔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술 마시고 소리 지르고 같이 열띠게 토론하며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희서는 그때 준하와 같은 3학년이었지만 아무런 동아리에도 들고 있지 않았다. 어디 매이는 건 딱 질색이었다. 책을 꼭 모여서 읽고 토론까지 해야 하는 거야? 미성숙한 것들... 뭐 그러면서 온갖 시건방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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