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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고립에 대한 불안

by 희수공원

[These things that are pleasing you can hurt you somehow]

[너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네게 상처를 줄 수도 있어]

[You better let somebody love you]

[누군가 널 사랑하게 하는 게 좋을걸]

...

[Let somebody love you]

[누군가 널 사랑하게 해 줘]


이글스의 Desperado가 마치 주제가인양 희서는 귀에 이어폰을 박아 넣고, Desperado가 왜 '무법자'라는 의미인지 그 비겁한 의미를 입밖에 낼 수 없는 날들에 대해 답답해했다. 자유를 원하며 혼자 떠도는 세상이 감옥일 수도 있다는 그 막막한 실상이 정말 드러나 버릴까 봐 불안한 그녀의 대학 3학년이 더 그녀 자신을 혹독하게 고립시키고 있었다.


"신희서! 여기 있었네. 너 아까 도서관에 있는 거 봤어. 옆 학생이 벌떡 일어나 짐 싸서 나가던데 무슨 일이야?"

"아, 몰라..."


답답하고 독한 장면, 사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어야 맞는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미주는 옆에 앉지도 않고 바로 도서관에 들어갈 사람처럼 희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하는 표정으로.


자칭 희서의 절친이라는 미주는 희서의 잦은 모습들이 맹견 불테리어 같다며 놀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한 바탕 있는 대로 얼굴을 찡그려 흘겨주고는 다시 그녀의 무법 세계로 가라앉곤 했다.


하필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불테리어라니, 친구라는 게 옆에 붙어 도발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미주가 옆에 앉거나 서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브리핑하듯 신나게 이야기하면 희서는 그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곤 했다.


새벽에 일어나 거의 첫 번째로 도서관에 도착하면 칸막이가 있는 곳을 지나 넓게 뚫린 6인용 책상 중간 자리에 앉는 것이 희서가 학교에서 하는 첫 루틴이었다. 어두운 새벽에 집을 나서는 자유에 집착하며 항상 같은 시작에 매달려 불안이 오지 못하도록 고정시키는 일이 뭔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최선의 대비라 여겼다.


그날은 입구에서부터 희서의 뚫린 자리 옆에 대여섯 권의 두꺼운 책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옆 사람을 보지 않으려 담을 쌓듯 책을 쌓아놓은 것임에 틀림없었다. 자리에 앉아 흘깃 보니 헌법, 형사법, 민사법 그런 류의 책들이었다. 답답함을 꾹 참고 공부하고 있는데 노란 포스트잇 쪽지가 건너왔다.


[책상에 연필 긁는 소리가 좀 심하게 거슬려서요. 공부에 방해가 됩니다.]


아이 정말! 일단 내지르기 전에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받은 쪽지 뒤에 끄적끄적 써서 다시 쪽지를 밀어줬다. 그 법학생은 바로 얼굴이 벌게지더니, 쪽지를 빡! 빡! 찢어 쓰레기통에 던지고는 책이랑 가방을 다 싸가지고 나가버렸다.


[내 긁는 소리 때문에 네가 공부가 안 돼서, 네가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못 되는 거랑, 너를 방해 안 하는 대신 내가 내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내가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못 되는 거랑, 뭐가 더 대한민국에 손해가 될까? 공부 안되면 네가 나가!]


아마 그 광경을 멀리서 미주가 본 모양이었다. 대충대충, 있던 일을 얘기해 주니 큰 눈을 더 똥그랗게 뜨고는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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