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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순간

by 희수공원

[... 그런 시간을 갖은 건 요즘 느끼던 지루함을 깨고도 남을 만큼 나의 촉각을 90도로 세우는 일이었다...]


너무 긴 문장인가. 온라인에 끄적거려 두고 꽤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다. 조용히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던 순간으로부터, 사실은, 살아온 시간들을 규정하고 앞을 내다볼 수 있다.


온라인에 박혀있는 쪽지를 열어보는 일은 드물었다. 어쩌다 쪽지 옆 숫자가 눈에 띄는 날이면, 누군가 희서에게 그 쪽지라는 것을 보냈다는 사실이, 모르는 사람이 타닥거리며 그녀를 향해 두드렸을 키보드의 낯선 소리를 상상하게 했다. 조용하게 흐르던 그녀의 시간을 향해 던지는 돌팔매를 맞을지 무시할지 결정해야 한다.


'단어가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갖은' 말입니다. 당신이 쓰는 단어는 저를...'


보낸 사람과 내용의 일부만 보고도 결정은 쉽다. 보통은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니 가맹하라든지 공동구매를 한다든지 하는 광고가 대부분이지만, 보낸 사람을 확인할 새도 없이 부분만 보이는 제목같은 내용의 첫줄에 손이 떨렸다. 단 아홉 개의 단어에서 희서는 그녀의 가슴을 후비며 상처를 내겠다는 의도를 읽었다.


너무 악의적인 생각일까. 희서는 익명의 두려운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싶지 않았다.


클릭하지 않았다.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무작정 끓어오르는 화산 같은 온도로 쓴 희서의 글들이 온라인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 글을 찾아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대로 앉아 당신 말이 맞다 수긍하며 우울하게 단어를 수정하는 일을 단순한 루틴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글쓰기를 진지하게 생각한 이후, 지면에 아니 온라인 공간에 박아두는 글자와 글자가 모이는 의미에 쓸데없이 민감해져서 혼자 쓸쓸해졌다가 허탈해졌다가 좌절하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


글을 올린 날, 오월 십 육일을 찾아냈다. 이전 날이 스승의 날이었구나. 어떤 일이 있었던 거지? 대체 '그런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틀렸다는 단어 바로 앞에 멈춰 서서 기억을 더듬었다. 운전하다 도로 위에 불쑥 올라온 그게 뭐더라? 영어로는 speed bump라고 하는데... 아, 그래 과속방지턱, 맞아. 과. 속. 방. 지. 턱. 천천히 정확히 소리 내며 그날 일을 생각하려 애썼다.


과속 방지턱, '갖은'이라는 잘못된 단어 앞에서 희서에게 오월의 기억이 서로 엉켜 떠오르고 있었다.


손가락의 상처는 빨리 아물어가고 있었다. 찢어진 상처에서 뚝뚝 떨어지던 핏방울이 여전히 기억에 선명했지만 상처는 이제 붉은 열기가 사라지고 건조한 가을의 바랜 황톳빛처럼 사소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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