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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by 희수공원 Feb 07. 2025

   한국으로 돌아온 준하는 몇 개월 동안 한국에 정착하며 일에 적응하느라 무척 바빴다. 셋이 같이 만나자던 동후도 준하의 바쁜 생활을 흘깃거리며 같이 만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가끔 희서는 준하가 일하는 회사 로비에서 준하와 차를 마셨다. 디자인 회의로 야근이 잦고 해외 출장이 잦아 따로 여유 있게 만날 시간이 없었지만 자투리 시간이 주는 행복은 마음을 조금씩 채워주었다. 준하가 잠시 출장이라도 나오면 희서가 강의하는 학교의 학생 식당에서 점심을 먹곤 했다. 교수식당의 가라앉은 분위기보다 학생 식당의 왁자지껄 자유로움을 즐기는 것을 둘 다 좋아했다.

  

   양념이 채 골고루 묻지도 않은 커다란 깍두기를 와작 거리며 신나 하던 희서를 준하는 기억하고 있었다. 설렁탕이 그날의 메뉴가 되면 희서는 일주일 전부터 준하에게 톡을 날려 같이 만날 시간을 기다렸다가 와작 거리며 행복해했다.

  

   바쁘게 슬프게 산 날들이 더 많았던 희서는 이제는 행복이 올 차례인가 보다 생각했다. 스물네 시간 모두 온전히 깨어 그 행복을 샅샅이 누리고 싶었다.

  

   깍두기 하나에도 바삭거리는 행복을 느꼈고, 로비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서로 웃음을 나누는 순간도, 짧은 만남에 헤어지는 인사를 더 길게 하는 그런 아쉬운 시간도 모두 한 겹 한 겹 기쁘게 쌓이고 있었다. 바쁜 중 만나는 건 시간을 더 짜릿하게 했고 둘을 더 애틋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 시간쯤의 점심이나 차를 마시면서도 서로의 시선 사이에는 끈끈한 뜨거움이 있었다. 바라보고 있어도 모자라고 그리운 느낌이란 그런 거라 생각했다.

  

   희서의 학기가 끝나갈 무렵 준하는 친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준하의 집에서 동후와 미주 가족을 모두 초대하는 상상만 해도 꽤 시끌벅적 파티가 될 것 같았다. 미주의 아이가 벌써 다섯 살쯤 되었으니 온 세상을 점령하고 싶을 것이었다. 희서는 파티를 상상하며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 준하가 고마웠다.

  

   백합꽃을 한 아름 샀다. 여름 꽃이지만 이제는 겨울에도 볼 수 있는 귀한 백합을 준하에게 주고 싶었다. 준하와 같이 있는 것이 꿈같다고 전해주고 싶었다. 백합은 그런 꽃말을 가지고 있었다. 향기가 진한 아름다운 백합, 보통은 남자가 여자에게 주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백합 향기에 취해 준하의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이모!"

  

   미주의 아이가 뛰어나와 희서에게 안겼다. 백합을 한쪽으로 들고 아이에게 뽀뽀 세례를 했다. 미주와 그녀의 남편인 성진이 현관에서 미소를 지으며 희서를 맞았다. 마치 미주네 집에 온 것 같았다. 그 뒤에 바로 준하가 따라 나와 희서의 꽃을 받아 주었다.

  

   "오, 이 향기 정말 좋아. 고마워, 희서"

   "오, 향기가 나요. 이모 향기, 이모 향기 좋아요..."

  

   아이를 미주에게 안기고 준하의 가벼운 포옹을 받았다. 희서가 제일 마지막에 도착했지만 늦지는 않았다. 동후가 훨씬 일찍 와서 미주와 음식을 만든 모양이었다.

  

   "이걸 다 만든 거야? 세상에!"

  

   희서가 눈이 동그래져 소리치자 미주가 준하를 보며 말했다.

  

   "이 메인 요리는 준하가 만들었어. 너한테 꼭 만들어 주고 싶었다나 뭐라나."

  

   희서는 준하를 바라보았다. 싱긋 웃고 서 있는 준하가 만든 건 도톰하게 구운 마늘과 초록 파슬리가 예쁘게 뿌려진 알리오올리오 올리브 파스타였다. 정갈하게 접시에 봉싯 올려진 면 위에 허브가 놓인 것이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나 볼 법한 멋진 요리였다. 고소한 향에 갑자기 배가 꼬르륵거렸다.

  

   미주의 아이까지 여섯 사람이 둘러앉은 원목테이블이 짙은 갈색으로 품격 있게 분위기를 받쳐주고 있었다. 미주가 사 온 와인을 성진은 희서와 미주에게 먼저 따라주었다. 그리고 준하, 동후와 자신의 잔을 채웠다. 부드럽고 다정한 성진이 미주와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둘의 시선이 하나가 되는 그 웃음에 희서는 질투를 느꼈다. 저렇게도 아름다운 시선의 머무름이라니 금세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감동이었다. 사랑은 저런 거구나.

  

   "이모 향기 좋아요, 이모! 이모!"

  

   아이 잔에는 포도주스를 따라 색깔을 맞추어 여섯이 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했다. 가장 기쁜 정찬, 가장 행복한 순간이 희서를 온전히 감싸고 있었다. 이 충만한 시간을 깊이 들이마시며 행복한 기운으로 오래오래 기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만나는 일, 손을 잡고 포옹을 하는 순간, 눈 맞추며 미소 짓고, 좋은 것들을 권하는 이런 시간들이 제대로 사는 거라는 기꺼움에 희서는 마냥 자신을 열어두고 있었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즐거운 가족의 뜨겁고 활기찬 웃음을 희서는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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