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하의 집에서 한 파티는 희서가 생각하는 최고의 밝은 빛을 품고 있었다. 아이를 손으로 다독이며 재우는 성진의 주위를 돌며 와인잔을 여전히 들고 흔들거리며 춤을 추는 미주가 아름다웠다. 가족의 견고한 행복이란 게 저런 걸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가득 차는 느낌이 희서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동후는 돌아오는 주에 있을 논문 실험 기획안 발표 때문에 일찍 자리를 떴다. 온통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준하를 안아주고는 집으로 먼저 돌아갔다. 문을 나서는 동후에게 희서는 고맙다는 눈인사를 했다.
희서는 편안하게 정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의 준하가 옆에 있었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고 텁텁한 열기가 느껴졌다. 와인을 따라 건배만 하고 분위기를 돋우던 미주의 남편 성진이 아이를 재우고 있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준하가 끄는 손을 따라 밖으로 나와 쌀쌀한 밤거리를 걸었다.
"진주는 보석 중에서 유일하게 가공하지 않은 온전한 그대로의 모습이야. 내게 온 너처럼..."
"은은한 핑크가 흐르는 흰색의 진주가 떠올랐어. 너를 생각할 때마다 스카알렛 레드의 주홍빛을 지나 핑크가 여리게 감도는 흰색이 왜 자꾸 마음을 흔들었는지 모르겠어. 주홍과 흰색은 서로 꽤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는 이 두 가지 색깔을 모두 가지고 있거든."
희서는 준하로부터 선물 받은 여린 핑크가 감도는 흰색의 나이트 슬립에 대해 듣고 있었다.
준하의 말이 주변을 너울거리는 모습으로 다가와 동그랗게 빛이 퍼지는 은은한 진주를 실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온전한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핑크 우윳빛 진주가 희서의 눈앞에서 스르르 녹아내리는 상상을 했다. 희서는 갑자기 멈춰 서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차가운 공기뿐이었지만 급히 퍼지며 사라지는듯한 핑크빛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쌀쌀한 밤 기온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준하는 갑자기 멈춰 선 희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희서의 내민 손을 잡아 준하 쪽으로 희서를 끌어당기자 따뜻한 준하의 체온이 희서에게 전해졌다. 술기운 때문인지 제대로 버티고 서 있는 것이 힘겹게 느껴져 준하의 가슴에 빰을 대고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뜨거움을 온몸으로 보내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편안한 루틴의 살아있는 소리에 희서는 마음껏 기대고 있었다.
"네가 없는 오랜 시간 동안 갖은 고통을 참으며 어떤 순간을 기다려왔어. 그게 지금인 것 같아."
희서는 머릿속이 뿌연 와중에도 준하의 그 '갖은'이라는 단어에 희미하게 웃었다. 그 쪽지의 단어 하나에 신경 썼던 희서의 예민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준하의 갖은 통증과 갖은 시간들은 희서에 대한 그리운 순간들로 오랜 갈증이었다가 희서 앞에 이제야 왔다.
준하는 희서를 더 힘주어 꼭 안았다. 준하 가슴에 기대고 있던 희서를 뜨거운 숨으로 다시 끌어안으며 둘은 하나가 되었다. 별이 내리던 밤거리의 차가움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순수한 건 온전한 거야. 너의 전체가 바로 나야. 그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너를 가지고 싶어. 너의 시간을 내게 주었으면 좋겠어."
손을 꼭 잡고 밤을 걸으며 준하가 하는 말을 희서는 가슴속에 하나씩 끌어안고 있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