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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by 희수공원 Feb 05. 2025

   시지프 아이디로 온 쪽지 답장에는 휴대전화 번호와 만날 장소, 날짜, 시간만 적혀 있었다. 한강변의 다소 낙후된 지역에 있는 작은 술집이었다.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호칭도 없고 그냥 덜렁 연락처, 시간, 장소라니 쪽지를 다시 살펴보며 희서는 준하가 맞기는 맞는 건가 불안해졌다. 일요일 저녁의 외출이었다.

  

   하지만 희서가 보낸 쪽지에 준하가 받을 거란걸 확신하고 썼으니 준하가 아니라면 이렇게 만나자는 쪽지 답장을 보내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여전히 불규칙하고 불안하고 자기 멋대로인 준하였다. 술집이니 차를 가져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몇 년 만에 허름한 술집에 마주 앉을 광경을 떠올리며 차라리 그게 덜 어색하겠다 싶었다.

  

   어둑한 노란 조명이 편안한 분위기를 내는 작은 펍이었다. 밖에서 예상하던 것보다 실내가 넓어서 놀랐다. 낡은 나무 테이블이 꽤 여유를 두고 일곱 개쯤 있었다. 온갖 종류의 술이 노란 조명에 반사되며 파스텔의 흐르는 색처럼 작은 바 안쪽에서 희서를 유혹했다. 와인보다 꼬냑이 어울릴 것 같은 어슴푸레한 바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의자에서는 앉으면 바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았고 한쪽 벽에 붙은 벽난로에서 타닥거리며 타고 있는 장작이 희서의 눈을 뜨겁게 했다. 나무 타는 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타고 있는 소리와 냄새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손님이 몇 없는 데다 유독 희서를 바로 쳐다보는 어떤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준하, 준하 맞는구나. 술집 조명 때문인지 준하 얼굴이 예전보다 더 탄 것처럼 보였다. 

  

   준하는 일어서지 않았다. 희서가 맞은편에 앉는 동안 준하는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감는 것 같았다. 희서는 준하가 바로 앉아 희서의 눈을 맞출 때까지 기다렸다.

  

   "미안해. 내가 너무 늦게 왔지?"

  

   6년 만에 만나 준하가 한 첫마디였다. 희서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기름이 잔뜩 둘러진 프라이팬에 물이 튄 것처럼 계속 방향도 없이 튀어 오르는 마음으로 어떤 말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워하던 준하 앞에서 몸은 굳어버려 마네킨이 된 것 같았다. 돌아오려고는 했었구나. 희서는 준하의 눈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동후는 강한 친구야. 다행이라고 생각해."

  

   갑자기 동후라는 이름이 나오자 희서는 자세를 고쳤다. 주문한 꼬냑이 얼음을 휘돌아 흔들거리며 희서 앞에 놓였다. 준하는 처음부터 다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다. 동후에게 듣지 못한 이야기를 준하에게 들을 수 있을까. 꼬냑을 마시려 잔을 드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희서는 오래전부터 준하와 동후라는 영역에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왜 전혀 몰랐을까. 준하가 돌아와 동후라는 이름을 말하기 전까지 희서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갑자기 모든 시간들의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아 두려움이 몰려왔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동후를 따로 만났어. 그리고 네 친구 미주도…”

  

   꼬냑 두 모금이 가슴을 태웠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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