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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강 단상

맛있는 3시간

by 희수공원 Mar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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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9시 시작 수업이 늦게 시작하는 다른 강의보다 인기가 없는 건 항상 그랬다.


코로나 여파로 집 밖을 향한 열망도 미지근하니 일찍부터 수업을 위해 밖으로 나오는 건 피하고자 하는 것도 이해한다. 그룹으로 맞대는 토의도 노골적으로 불편해하는 시간에 산다.


2, 3년 전부터 수업 시간과 내용에 대한 조정을 해야 할까 망설여오긴 했다. 이 정도의 논의와 공부량은 되어야지 했던 것이 사단이 된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할 사람만 신청하라.' 한 학생이 전해준 자기들만의 강의 평가, 나는 이걸 긍정 평가로 받아들였으나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폐강을 예감한다. 하지만 학생 수가 많이 모자란 것도 아니어서 수강 변경 기간에 등록 학생이 늘면 수업이 진행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딜레마다.


출석부를 보니 작년에 개인 사정으로 수업 철회를 하며 다음 학기에 꼭 듣고 싶다 했던 학생에게 괜히 미안하다.


첫 주 수업 3시간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수업이 되는 상황은 한 학기 수업의 첫 수업으로 이 수업을 진행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으로 온다.


보통 첫 수업은 전체 학기 수업 진행의 소개와 가벼운 관련 주제를 다루게 되는데 학생들 또한 그런 분위기를 기대한다.


수업 시작 전에 몇 시에 수업을 끝내줄 거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나는 수업을 일찍 끝낸 적이 없어서 학생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마주하기도 한다.


첫 수업 소개 중간중간 수업 변경을 할 학생들은 나가도 좋다고 하면 꼭 한두 학생은 가방을 싼다.


트렌드를 놓치고 있는 건지 불안하다.


그룹 토의의 분위기를 위한 라포형성의 시간으로도 귀하게 쓰이는 첫 수업이다. 하지만 그건 내 수업의 필수 과정이고 다른 수업은 강의식이니 자칫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다.


나는 강의으로 전문 이론과 그에 대한 응용 방식을 잘 전달하지 못한다. 멋지게 강의만으로도 수업을 잘하는 사람들이 엄청 부럽다.


폐강이 예상되는 첫 수업 3시간을 특별수업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언어학 이론이 어떻게 평생 쓸모가 있을지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자료를 예를 들고 실습하는 워크숍이 될 것이다.


두뇌와 심리를 언어와 연계한 연구 결과들, 정체성을 가지는 브랜드네이밍, 그리고 말하기의 인문학적 고찰의 필요성을 위해 좋은 책을 추천할 것이다.


여전히 다양한 가능성 속에 어떤 자료들이 선택되고 논의될 것인지는 수업 당일에 학생들과 마주하며 최종 결정된다.


살아있는 리듬 속에서 여운을 오래 가질 가치를 고민하며 쓸모 있는 3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가장 긴장되고 가슴 떨리는 수업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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