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잘 나가는 것, 잘 팔리는 것

튜브릴 앞에서 떠오른 사람들

by 시마

업무차 유통상가를 둘러보다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관심을 끌려는 듯, 매장 밖에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튜브릴.


튜브릴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면접 자리에서 자신의 장점과 포트폴리오를 어필하는 사람들 말이다.

tubereel.jpg 전시된 튜브는 미터(M) 단위로 잘라 판매한다

튜브릴에 감긴 튜브는 모두 비슷해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조금씩 다르다.


그 색상과 크기가 다를 뿐 아니라,

손으로 만져보면 단단함, 늘어남, 휘어짐 같은

경도와 유연성의 차이도 느껴진다.


그뿐이 아니다.

독성의 내용물을 견딜 내성이 있는지,

극한의 온도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등

육안으로는 알 수 없는 특성들도 있다.


저마다 차이가 나는 튜브는 각 환경에 맞게 사용되고,
그중 쓰임이 탁월한 튜브는 보다 높은 가격에 팔린다.

사람들도 이와 같다.

겉보기엔 모두 비슷해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가진 성격과 능력이 모두 다르다.


다양한 직업들이 있지만

모두 동일한 능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공무원의 자리가 요구하는 능력은

투명한 튜브의 특성과도 같다.

내용물이 오염되지 않는지, 그 맑음을 유지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 노동자가 요구하는 능력은

단단한 경질 튜브와도 같다.

외부 환경의 물리적 위험에 견딜 만큼 단단해야 한다.


그 밖에 일반적인 접근이 어려운

특정 자격을 요구하는 직업도 있다.

이는 특수 소재를 담아야 하는 전용 튜브처럼,

그만큼 높은 값이 매겨진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된다.

능력을 갖춘다는 것과

쓰임이 높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높은 사양의 튜브는 비싸게 팔리는 반면

사용처가 다양하지 않아 많이 팔리지 않는다.


하지만 평범하고 일반적인 튜브는 저렴하나

다양하게 쓰여 금세 팔리고 새로운 튜브릴로 채워진다.


그래서 그날 본 튜브릴 또한

어떤 것은 인기가 많아 거의 다 풀려있고

어떤 것은 빽빽하게 감겨 있었다.


쓰임이 많고 비싼 값에 팔릴 수는 없을까?
모두가 그런 일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튜브나 물건의 가격표처럼

그다지 정직하게 동작하지 않는다.


기업은 낮은 임금으로 구성원의 생산성을 높이고 싶어 하며,

구성원은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보상을 원한다.


어떤 이는 노동의 양(시간)에 가치를 두는 반면,

어떤 이는 노동의 질(집중)에 가치를 두기 마련이다.


여기에 사람들 개개인이 가진

경험, 가치관, 주어진 환경, 관계

이러한 것들이 섞여 정직함과는 더욱 멀어진다.


이처럼 튜브릴에 사람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론 그것과는 전혀 닮지 않은 괴리감도 함께 보인다.


보상과 평가, 그에 대한 쓰임과 가치에 관해
스스로 고민해 보고 전략을 잘 구상해야 하지 않을까?

※ 참고 : 쓰임과 가치의 경제학 – ‘희소성과 효용의 차이’


세상의 모든 상품은 가격이 있지만,

모든 ‘가치’가 가격으로 환산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재화가 ‘높은 가격’을 가지는 이유를

희소성(scarcity)효용(utility)으로 설명한다.


희소하다고 해서 꼭 비싼 것도 아니고,

효용이 높다고 해서 꼭 잘 팔리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는 희소하지만 실생활에 쓸모는 거의 없다.

물은 어디에나 있지만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가격과 가치는 꼭 일치하지 않는다.


직업의 세계도 이와 유사하다.

특수 능력을 가진 사람이 희귀하다고 해서

반드시 널리 쓰이는 것은 아니며,
평범한 능력이라도 많은 곳에서 필요하면

높은 쓰임새를 지닐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높은 능력”보다 “적절한 쓰임”이

더 중요한 순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희소성을 높이는 동시에,
효용이 필요한 자리에 놓일 수 있도록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전략이 곧 삶의 설계다.


* P.S : 연재 날짜 변경 '화/금' -> '월/금'

keyword
이전 02화빗속에서 찾은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