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길에서 떠오른 성장의 풍경
산책길에서 마주한 계단.
규칙적으로 나열된 디딤판 사이로
불규칙한 보폭의 간격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마치
내가 겪어온 성장의 곡선과 닮아 있었다.
짧은 구간의 계단이었지만
길게 펼쳐 상상해 본다.
저 멀리 계단 꼭대기에,
어렴풋이 보이는 아내와 강아지가
내 쪽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
그곳은 내가 도달하고자 했던 목적지.
결국 나는 이 계단을 올라야만 한다.
처음 한 발을 내디딘다.
하지만 곧 마주한 긴 보폭의 계단.
빠르게 오르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나는 하나의 계단에서 여러 번 발걸음을 뗀다.
여러 번의 발걸음과 같이,
익숙하지 않은 일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처럼
더 많은 수고와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또다시 다음 계단에 발을 딛는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처음보다는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익숙함이 쌓이고,
그 위에 리듬이 더해진다.
제법 목적지에 가까워졌다고 느낄 즈음,
또 한 번 긴 보폭의 계단이 나타난다.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성장통'이라는 도전을 만난다.
"이제 반쯤 온 것 같은데..?"
처음엔 희미하던 목적지가
이제는 제법 또렷해진다.
"그래, 다시 힘을 내서 가보자."
오른쪽에 보이는 기둥.
그 손잡이를 보고 있으니,
힘겹던 순간에 손을 내밀어주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떠올랐다.
"그래. 혼자 힘으로만 오른 건 아니었어."
하지만 익숙해질 무렵 또다시 반복되는 시련.
계단이 끝났다고 믿을 즈음,
새로운 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도대체 이 길의 끝은 있는 걸까?"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분명히 처음보다는 더 선명한 끝이 보인다.
"그래, 거의 다 온 것 같아."
마침내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딛는다.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고,
아내가 내 손을 잡아준다.
뒤를 돌아보니
그토록 힘겨웠던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작 이 길이 그토록 힘들었던 거였나?"
시련을 딛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나 또한 어느새 성장해 있었다.
그러니 그 길이 어렵긴 했어도
결코 헛된 여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단을 다 오른 뒤에도
또 다른 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만, 나 역시도 예전의 내가 아니다.
계단을 오르며 근육이 붙었고,
도전하며 이루어 낸 경험들이 쌓였다.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길은 낯설지만
이제는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다.
새로움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두렵지만,
노력과 시간이 쌓이면
어느새 익숙함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도전을 거듭한 횟수만큼,
두려움은 줄고 용기는 자란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한다.
※ 참고: 계단 사이의 '넓은 보폭'에 담긴 의미
공원이나 산책길의 계단에서 중간중간 넓게 설계된 구조는
걷는 사람의 리듬과 회복, 안전과 여유를 고려한 설계다.
1. 피로 완화
계속된 계단은 근육에 부담을 주기에,
넓은 보폭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돕는다.
2. 보행 리듬 조절
일정한 높이만 반복되는 구조보다,
간격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걷기 리듬을 만들어준다.
3. 배수 및 안전 확보
비가 올 경우 물이 고이지 않도록 돕고,
낙상 시 충격을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
4. 쉼과 유도의 공간
중간 평지는 벤치나 안내판, 조명을 설치하기 좋고
때로는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쉼’의 지점이 되기도 한다.
계단의 넓은 보폭은 곧 멈춤을 허락하는 구조다.
앞만 보고 걷는 인생의 여정에서도
우리는 중간중간 멈춰 설 공간이 필요하다.
숨을 고르지 않은 질주는 결국 지치도록 하고,
되돌아보지 않은 성장은 종종 방향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