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상상해보며...
여행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가게의 유리창.
그 위엔 색색의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남긴 ‘추억의 끄적임’이었다.
가족여행에서, 연인과의 데이트에서,
혹은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그 순간 느낀 감정을 짧게 적어 붙여둔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되어
그 메모를 발견한다면,
분명 새로운 감회가 밀려올 것이다.
과거의 내가 느꼈던 감정을 다시 읽으며
지금의 나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져 있나?
조금은 성장했을까, 아니면
그때는 없던 새로운 감정이 느껴지나?
그리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사진을 찍어 곧바로 온라인에 올릴 수 있는 요즘,
여행지의 포스트잇이 주는 그 묘한 감동은
점점 줄어드는 게 아닐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기억에서 희미해질 즈음,
그 장소에서 나의 글귀를 우연히 발견하는 순간
“아, 내가 그때 이런 말을 했었구나.”
하며 지난 시간을 곱씹는 기분은
온라인 사진첩을 스크롤하며
옛 사진을 꺼내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많은 이점을 준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단순히 우리의 손을 덜 움직이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아날로그가 주는 느림과
그 안에 담긴 감성의 즐거움마저
조용히 앗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참고 : 기억을 들춰보는 두 가지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1. 장소에서 내 글을 발견하는 경우
1.1 맥락 회상(Context-dependent memory)
내가 글을 썼던 물리적 장소와 똑같은 공간에 다시 서게 되면, 뇌는 그때의 시각·소리·냄새 같은 환경 단서를 통해 기억을 끌어올리게 된다.
→ ‘그때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이 생생하게 복원됨.
1.2 예상치 못한 발견의 설렘
내가 찾으려고 애쓴 게 아니라, 우연히 발견했을 때 오는 놀람과 반가움이 감정의 강도를 높임.
1.3 감각의 다중 자극
벽의 질감, 종이의 변색, 잉크의 번짐 같은 물리적 변화가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함.
2. 휴대폰에서 옛 사진을 찾아보는 경우
2.1 정보 검색 중심
사진첩에서 의도적으로 날짜·장소를 찾아 들어가기 때문에 ‘검색→확인’의 과정이 주가 됨.
→ 감정보다 정보 확인의 성격이 강함.
2.2 감각 단서의 결핍
화면 속 이미지로만 과거를 접하기 때문에,
당시 공간의 온도·소리·냄새 같은 비시각적 요소가 부재.
2.3 기대된 결과
이미 내가 찾을 내용을 알고 들어가기 때문에 ‘발견의 놀람’이 적음.
3. 차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
장소에서 글을 찾는 것은 ‘몸을 움직여 기억을 찾아다니는 일’이고,
휴대폰에서 사진을 찾는 것은 ‘기억을 목록에서 꺼내 확인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