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잃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실패의 복기 : 잃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2019년 10월 4일.
아내의 생일날이었다.
아파트 편의점에 앉아 레쓰비 캔커피를 마시며 펜을 들었다. 아내의 생일날에 편지 한 장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그 당시 나의 상황을 보자. 코로나로 전 세계 그리고 한국에서 막대한 돈을 풀었다. 역사상 최저금리와 함께 수도권의 아파트는 폭등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자고 나면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 신고점을 형성하면 할수록, 벼락거지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그 벼락거지 중에 상거지가 나였다. 유일하게 내가 샀던 아파트가 폭락했다. 물량 앞에 장사 없다. 역시나 그 말이 맞았다. 내가 살던 지역은 대량 아파트 공급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폭락한 가격을 그대로 뚜드려 맞았다.
1주택자는 가격이 오르던 내리던 상관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아니다. 그것은 기회비용을 잃는 것이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오른 자산(아파트)을 기준으로 대출이 더 나온다. 이것을 현금흐름과 투자 자금으로 생각하면 손해는 분명했다. 유동성이 편향적으로 흐른 탓이다.
전국의 아파트 가격과 다르게 폭락하는 내 아파트. 아내의 생일이지만 마땅히 선물할 돈도 없는 못난 남편. 그럴듯한 레스토랑은 아니라도. 음식점을 예약하고 아이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선물을 주고받을 순 없었나?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의 아빠일까?
왈칵 눈물이 났다.
나이 든 배 나온 아저씨의 눈물. 고작 레쓰비에 편지 한 통. 모멸감과 분노, 억울함과 비참함이 몰려왔다.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거지? 분명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나와 내 가족은 왜 이렇게 행복한 감정을 느끼며 살지 못할까? 내가 욕심이 많은 걸까?
나는 수석 졸업을 했다.
가난한 집안에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발적 외톨이가 되는 거였다. 점심시간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으러 갈 때. 나는 혼자 도서관 계단에 앉아 몰래 도시락을 먹었다. 밥 먹으러 가는 시간 10분, 식사 10분, 차 한잔 10분, 장난스러운 대화 10분. 그 모든 시간들이 나에겐 사치였다.
저녁에는 찬밥에 컵라면을 말아먹거나. 혼자 장우동에서 매번 만둣국을 먹었다. 만둣국을 시키면 밥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그만한 가성비 음식이 없었다. 외로움은 그저 나 혼자 삼키면 되는 문제였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했고. 장학금으로 수천만 원을 메꿨다. 수석 졸업을 했지만, 졸업하니 1500만 원 학자금 대출 빚쟁이였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행복했다. 졸업하자마자 번듯한 직장에 들어왔고, 이제 돈 걱정 없이 살 테니까.
이제는 방학 때마다 막노동을 안 해도 된다.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아파트 공사장을 배회하지 않아도 되고, 여기저기 다치며 공장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 따박따박 월급은 나올 것이고, 나는 고만고만하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 줄 알았다.
빌어먹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아내의 편지에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레쓰비를 원샷으로 때려버리고, 캔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이제 오늘의 레쓰비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자발적 외톨이가 될 시간이 왔다.
# 다시 한번 자발적 외톨이가 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것이 내가 가진 삶의 태도이다. 모든 거래는 교환과정이며, 그에 따른 기회비용의 환율이 적용되는 것이다. 내가 교환하기로 한 것은 바로 ‘시간’이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내가, 시간이란 악마와 유일하게 거래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었다.
아내의 생일 이후.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미친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다시 한번 책상에 앉으니 죽을 맛이었다. 무엇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몇 페이지를 보면 그냥 하루가 지나갔다. 책 한 권을 읽는데 한 달이 걸리는 것 같았다. 이래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 같았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무작정 읽었다. 부동산, 주식, 자기계발서, 투자철학서, 블록체인 등 돈이 된다 싶은 것들은 무조건 읽었다. 읽은 책은 독서록을 기록했고, 기록한 독서록을 소량 출판해서 소장용 책으로 만들었다. 복사하고 발췌해서 스프링 노트에 붙이고, 여러 책의 내용을 단권화해서 필기했다.
웃겼다.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헝그리 정신으로 돌아간 아재가 기특하기도 했다. 하지만 힘들었다. 쉬운 경제 용어도 이해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투입하는 시간 대비 나의 성장이 너무 느린 것 같았다.
그때 최성락 교수의 책을 만났다.
최성락 작가는 이상한 필체를 가졌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쓴다고 할까? 화려하진 않았으나 글은 쉬웠고 논리가 분명했다. 최성락 교수의 어느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를 우습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경우 자기계발서는 쉽고 평의 한 글들이 많다. 사람들의 동기를 자극하지만 여느 책이나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 심지어 자기계발서를 읽지 말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최성락 작가는 반박한다.
자기계발서를 100권 정도 읽었을 때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하지만 일정 분량 이상을 초과했을 때에만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하에 묻힌 보석을 채굴하다 포기한 것처럼, 100권 정도의 깊이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300권, 500권 …. 이런 식으로 더 많은 양을 때려 넣어야 ‘질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래, 물량을 더 때려 넣어야 하는구나.
최성락 교수의 조언대로, 나는 독서량을 꾸준히 늘려갔다. 300권, 500권, 1000권… 독서량이 늘어났다. 책은 3회독 이상, 가능하면 3회독 이상 읽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역이용하기 위해서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10년이 필요하나고 한다. 아니, 부자가 되기 위해서 10년이 필요하다고 믿어야만 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믿어라. 하루에 3시간씩 10년이면 대략 1만 시간이다. 나에겐 시간이 부족하다. 하루에 3시간을 초과해서 독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가족과 나의 자본주의 생존이 가능하다 판단했다.
보아라.
나는 실패하고 넘어졌다.
100권의 책을 사면. 그중에 양서는 5권 이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시간, 허리, 눈을 갈아 넣는다. 나를 희생하고 가족의 경제적 생존을 얻는다. 그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것이 내가 시간의 악마와 거래한 조건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서툴렀고 무모한 방법도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쓴다.
조금이라도 더 쉽게 나의 실수는 필터링한다. 그리고 그중에 알짜베기 알맹이를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한다. 그것이 생각의 유산이다.
나는 멍청하고 비효율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은 좀 더 시간을 아껴 가족과 함께 하길 바란다. 나처럼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평범한 아재가 각 잡고 공부해서 투자하면. 이렇게 보란 듯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길 바란다.
여러분의 투자를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