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가지만 따는 건 쉽다

by 영복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봄이 남긴 훈내를 풍기던 5월의 바람이 어느새 그 모양과 성격을 바꾸어 몸 여기저기를 지독히도 덥힌다. 여름만이 주는 녹색의 푸르름을 바라보며 또 한 계절을 넘겨보려하지만, 원체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 그렇게 긍정적으로 먹은 마음도 한 여름의 더위 앞에서는 다시 무너지곤한다. 이런 더위에는 이처럼 값싼 감상보단 결국 최고의 발명품인 에어컨이 답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 행정실은 놀부 심보만큼이나 야박하게 에어컨을 틀어준다. 아침부터 30도가 훌쩍 넘는 날씨에도 에어컨 가동 시작 시간은 11시가 원칙, 학생들의 하교와 함께 종료라는 무쇠같은 철칙을 한 번도 어기는 법이 없다. 자연스레 아이들은 에어컨이 꺼진 교실에서는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고, 이 주의산만은 담임교사의 체질과 콜라보를 하여 그 세를 더 키워나가게 된다. 결국 아이들 앞의 나는 더 이상 수업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더운 날씨에도 아이들은 체육 시간만 되면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교실보다 더 더운 강당, 그리고 뙤약볕의 운동장에서도 아이들의 눈은 교실에서의 흐리멍텅한 눈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다. 이런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교실에서 배우는 그깟 1시간의 배움보다 운동장에서 보내는 10분의 즐거움이 우리 반 아이들 인생에 더 큰 행복과 밑거름이 될거라 합리화를 한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이 더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보다는 나가서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더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지난주도 학생들과 적당히 모의해서,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 냈다. 그동안 발표를 열심히 했으니, 그리고 이번주는 OO의 생일이니 우리는 이러고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나가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갔다. 운동장에 나가서 우리 반 학생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티볼과 피구 등을 하고, 또 신나게 땀을 뺐더니, 이 여름도 이렇게 지나가면 또 여름의 한 꼭지가 행복하겠구나 생각하던 찰나, 교무실로부터 쪽지가 와 있었다.

"학생 열사병 방지, 운동장 활동 자제."

역시 적은 내부에 있다. 왜 체육 활동을 미리 고지하지 않았냐하는 외부의 적 소식을 접할 때는 황당한 마음뿐이었지만, 내부자가 겨누는 총은 황망함과 더불어 한심한 마음까지 든다. 학생들의 열사병이 걱정이 되면 아이들이 놀면서도 쉴 수 있게 운동장에 그늘을 마련해주고, 학교의 특별실을 (학생들은 동의하지 않는)자신들만이 원하는 공간으로 만들 예산으로 운동장에서 행복한 아이들을 덥지 않게 지원해주면 될 일이다. 하지만 금지라고? 고작 몇 분 운동장에서 뛰는 일에 그렇게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웃음을 왜 꼭 옳지만도 않은 당신들의 기준으로, 손 안대고 코 풀듯이 해결하려하는지 모르겠다. 여름만이 주는 계절의 가르침은 교사가 가르칠 수 없다. 또한 가르칠 수 없다고 손을 놓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가르칠 수 없는 것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교육이다.

우리 반 학생들만 보더라도 학교 마치면 학원 뺑뺑이를 돌다가 집에 오면 11시, 숙제까지 하면 12시, 1시에 자는 아이들이 대다수이다. 이런 아이들은 도대체 언제 행복해지는가? 입시가 끝나면? 취업하면? 학생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순간과 장소가 바로 눈 앞에 있는데도, 그저 쉽게 쉽게 곁가지만 따며 온실 속에서 원하는 모양으로만 키워가는 것이 과연 교육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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