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드디어 한화이글스가 정규리그 1위 자리를 다시 차지했다. 갑자기 쏟아진 비도 한화이글스의 질주를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갑자기 내린 소나기는 식물타선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한화이글스의 타선에 흠뻑 물을 주었고 타자들의 방망이는 그 덕에 오랜만에 여유있는 점수를 뽑아냈다. 매년 꼴찌 후보라고 놀림 받고 그 놀림에 긁혀서 한마디도 할 수 없는 한화이글스 팬으로서 이러한 1위 탈환의 기쁨은 올드 팬에게 언더독의 반란이라는 말 이상의 큰 감동을 준다.
나의 한화이글스 사랑의 역사는 꽤 길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와 형을 따라서 야구장에 곧잘 갔었다. 증축 공사를 하기 전의 한밭야구장 시멘트 바닥에 앉아서 야구를 본 그 때의 엉덩이 촉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의 한화이글스는 나름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고 불리며 리그에서 잘 나가는 팀에 속했는데, 그 정점이 바로 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21세기로 들어오기전 마지막 우승을 한 팀이 바로 한화였고, 그러한 한화의 성장과 성공에 나의 관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 일조했다는 대전인으로서의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그 때가 한화이글스의 마지막 우승이 될 줄을...
2006년에 나는 고3이었다. 고3의 기억보다 내 뇌리에 더 오래남아있는 건 한화이글스와 삼성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이다. 괴물 투수 류현진과 문동환, 송진우, 구대성 등의 탄탄한 투수진과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필두로 하여 한화가 오랜만에 우승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삼성라이온즈에게 우승을 내어주고 말았다. 그럼에도 나는 한화이글스가 다시 강팀으로 우뚝 솟아오르는 모습에 큰 벅참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이 한화이글스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이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전 국민을 야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으로 빠져들게 했던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전승 우승은 야구팬들에게는 큰 추억과 자랑이지만 한화 팬들에게는 아픈 기억이다. 왜냐하면 올림픽이 끝난 후부터 한화의 성적은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했고, 결국 비밀번호를 생성하게 되는 암흑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마가 낀 것마냥 그 이후로 한화는 대부분의 트레이드를 실패하고, 잘하던 선수도 한화만 오면 커리어가 떨어지는 등 아무도 한화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결국 한화는 8개 구단 경쟁 체제에서는 8위, 10개 구단 경쟁 체제에서는 10위를 마크하며 자꾸만 89108910 등의 비밀번호를 생성하는 약팀의 상징이 되었다.
올해도 큰 기대는 없었다. 작년에 괴물 투수 류현진이 돌아와 큰 기대를 했지만 결국 한화의 최종 순위는 벤치에 붙은 껌마냥 또 그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막 경기를 이기고, 많은 연승을 달려가며, 지금의 자리까지 차지하게 됐다. 물론 선수들의 노력이 가장 크겠지만, 보살이라고 놀림받아도 항상 그 자리에서 응원하는 팬의 역할도 결코 작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는 야구 안 본다며 티비를 끄고 리모컨을 던지지만 다음날 18:30분만 되면 다시 티비를 키는 사람이 나뿐은 아니지 않은가?
올해부터 야구에 맛을 들인 와이프는 나의 가장 가까운 야구 집관, 직관 파트너이다. 야구라는 스포츠도 혼자 볼 때보다 둘이 보면 더 즐겁고, 벅찬 역전의 순간에도 누군가와 그 감동을 나누면서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한화가 역전하는 순간 레몬이도 즐거운지 엄마 뱃 속에서 손과 발로 엄마와 교감을 더 자주하기도 한다. 둘이 봐도 행복한 이 스포츠를 셋이 보면 또 얼마나 행복할 지 벌써 기대된다. 부러워만하던 아빠가 딸의 손을 잡고 직관을 가는 게시물이 이제 다른 사람의 핸드폰에 펼쳐질 나의 모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최근 선물 받은 한화이글스 아기 옷을 얼른 레몬이가 입고 같이 직관 가는 순간을 기대하며, 또 레몬이가 태어나는 해가 한화이글스의 21세기 첫 우승의 해이길 간절히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