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양보가 미덕인 걸까

내년 생일이 당연히 오지는 않는다 #6

by 진동글

감정 표현이 어려워진 데는 무수히 많은 일이 있었으리라. 그런데 원장님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의외로 엄마와 동생들, 우리 가족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엄마는 엄청난 워킹맘이었다. 일하면서 대학원 공부도 하고, 딸 셋도 낳았다. 엄마는 바빴고, 늘 집에 늦게 들어왔다. 같이 보낸 시간이 많이 적어서인지 엄마랑은 조금 어색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엄마가 나에게 스킨십을 할 때가 있었는데, 바로 무엇인가 칭찬할 때다.


"우리 A 착하네. 잘했어."


엄마가 이렇게 말하며 손을 잡거나 머리를 토닥이면, 어린 나는 너무 좋아서 몸을 이리저리 꼬았다. 엄마가 내 손을 꼭 잡고 눈이 휘어지면서 웃을 때가 가장 좋았다.


아마도 나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예쁨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던 것 같다.








초중학교 시절 나의 전부는 바이올린이었다. 입시생도 아닌데 늘 고등학생 언니들하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 연습했다. 끽끽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는 게 너무 싫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바이올린은 백이면 백, 음악이 아닌 소음이 되었다. 런데 오히려 이런 점이 좋았다. 매일매일 더 예쁘게 곡을 빚어가는 게 재밌었다.


콩쿨 즈음해서는 늘 늦게 들어가서 엄마나 아빠가 학원으로 데리러 왔다. 그때마다 엄마는 날 안쓰러워하면서도 반달 웃음을 지었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독한 구석이 있는지 모르겠네. 나인가?"



이렇게 말하는 엄마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때의 나는 내심 뿌듯했던 것 같다.




청소년 시립 관현악단에 들어가고, 처음 참가하는 커다란 규모의 콩쿨을 준비하던 날이었다. 잘하고 싶어서 말 그대로 눈이 돌아 있었고, 매일 바이올린 선생님을 붙잡고 늘어졌다.


연습실에 박혀서 콩쿨곡을 연습하고 있을 때였다. 보면대가 자꾸 내려가 짜증을 내며 보면대를 발로 살짝 툭 찼다.



"A야, 이제 가자. 내일 학교 가야지."



흠칫 놀라 선생님을 보고 시계를 봤다. 학원에 나와 선생님만 남은 늦은 시간이었다. 엄마아빠한테 전화를 했는데 둘 다 연결이 안 됐다. 깡시골이었던 우리 집은 여덟 시 반이면 막차가 끊겼고, 택시 타기도 무서웠다.


"선생님, 엄마아빠가 전화를 안 받으세요."


"그래? 그럼 선생님이 데려다줄게."


선생님은 운전이 서툴렀다. 좁은 시골길 입구부터 침을 꼴깍 삼키는 게 느껴졌다. 선생님선생님 급하게 불러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물론 선생님은 문 앞까지 데려다준다고 하셨지만, 극구 거절하고 걸어갔다.


콩쿨 꼭 상 타고 싶다. 아 왜 거기가 잘 안 되지. 손이 작아서 그런가. 손가락 자라나는 음식 없으려나. 돌멩이들을 툭툭 치며 걸어갔다.




집 대문에 도착하니 까망이가 보였다. 밤인데도 크게 흔들리는 꼬리가 보였다.


큭큭 웃으며 마당에 앉아 까망이를 쓰다듬었다. 흙발인 까망이가 품에 안기며 옷이 더러워졌다. 까망아 이러면 나 엄마한테 혼난다고.


갑자기 엄마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마를 써? 사업? 미쳤어? A 콩쿨이 코앞이야. 앞으로 예고, 음대 준비하려면 레슨도 서울로 받으러 가야 되는데 그 돈 어떡하라고? 더군다나 이렇게 상의도 없이?"


"무슨 서울 레슨이야. 지금도 잘하잖아. 그리고 뭐 얼마나 벌었다고. 공무원 쥐꼬리만 한 월급보다 이거 사업 조금만 지나면.."


"자기가 지금 20대야? 딸린 애가 셋이고 애 하나는 예체능 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데 돌았어? A 레슨비가 얼만 줄이나 알아? 그거 당장 어떡하라고. 이혼해."




창문은 열려 있었고 엄마의 울음 섞인 고함소리는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차가운 밤공기와 엄마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뒤엉켜 더 선명하게 들렸다. 콩콩대는 심장을 느끼며 밤하늘만 바라봤다.


나만 바이올린을 포기하면 모두 다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바이올린을 사랑하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만 참으면 될 텐데.


엄마아빠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면서 옷을 툭툭 털고 집에 들어갔다.








콩쿨은 보기 좋게 망했다. 그날 밤 이후 집중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내 한계를 느꼈던 것도 있다. 좁은 물에서는 내가 잘하는 축이었는데 큰 물로 가니 잘하는 애들이 많았다. 나는 그냥 조금 바이올린을 켤 수 있을 뿐이었다.


바이올린을 그만둔다는 마음을 먹었음에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여전히 바이올린 켤 때가 제일 행복하고 재밌었다.


그렇지만 결국 나는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다. 내가 잘하는 것이 양보라서 그랬을까. 마의 슬픈 얼굴을 보기 싫었다. 큰 꿈이 없어지니 다음 목표는 없었다. 엄마가 딸 셋 중 하나는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으니 그냥 교사.


그날 이후 나는 더더욱 착한 딸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도 약하다는 걸 알고 나니 모두를 챙겨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이 생겨났다.







원장님은 내 이야기를 듣다고 갑자기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에서 나온 커다란 상자에는 털실로 만든 인형들이 들어 있었다.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포크? 그 캐릭터처럼 생긴 것들이었다.


"무슨 색을 가장 좋아해요?"


"저는 노란색이요."


"노란색, 얘는 A씨에요."


선생님은 상자를 뒤집어 모든 인형들을 꺼내고 내가 고른 노란 인형을 넣고 그 옆에 까만 인형을 았다.


"여기는 A씨가 부모님의 대화를 들었던 집 마당이에요. 지금은 밤이에요. 아 맞다, 이 까만 애는 까망이에요."




사람 인형도 아니고 몰입이 안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인형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A씨는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지금의 A씨라면 14살의 A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한참동안 할 말을 생각했다.



".... A야, 속상하고 슬펐겠다. 바이올린 정말 좋아했는데 말이야."



갑자기 인형을 쓰다듬고 싶었다. 인형을 토닥이며 말해줬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왜 꾹 참았어. 엄마가 홧김에 한 말이었는데 바보. 그리고 엄마아빠랑 함께 고민해 볼 수도 있었을텐데, 모든 걸 왜 다 네가 해결하려고 했어. 미련하긴."






그날 상담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그 작은 노란 인형이 계속 생각났다.



"엄마가 없으면 A가 엄마야."


"A가 언니니까 양보하자. A는 어른스러우니까 괜찮지? 동생들은 애기잖아."


"동생들은 A를 보고 크잖아. 동생들한테 좋은 언니가 되어야지."


내가 무수히 많이 들었던 말들이 나를 한없이 양보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나 보다.


완벽한 첫째가 되지 않아도 좋고, 모두의 해결사가 되지 않아도 되고, 이상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데.




그리고 웃기게도 이건 노란 인형뿐 아닌 지독한 K장녀 그 자체인 지금의 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이전 05화첫 목표. 솔직하게 감정 표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