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 멀고도 가까운 이름

내년 생일이 당연히 오지는 않는다 #8

by 진동글

어느덧 상담을 받은 지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선생님 앞에서는 늘 할 말이 많았다. 어느새 선생님은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 회사 사람들까지 나의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말을 할까, 회사에서 짜증 났던 이야기를 하면 될까. 머릿속으로 이야깃거리를 찾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퇴근했어?"


"엉."


"알았어~ 퇴근했나 전화해 봤어. 이번주는 언제 와?"


"흠, 내일?"


"그래 알겠어. 내일 내려올 때 연락해."


"엉."


전화를 끊고 문득 생각했다. 와 나 진짜 무뚝뚝하다. 어딜 가든 애교가 많은 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유난히 엄마한테는 무뚝뚝한 반응이 나간다. 상담센터 문을 열면서 생각했다. 오늘은 엄마 이야기를 해야겠다.






커피를 내리는 선생님 뒤통수에 대고 냅다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볼 때 저는 애교가 많아요?"


"어, 글쎄요. 그런 편이지 않을까요?"


"근데 왜 엄마한테는 애교가 안 나갈까요?"



선생님이 커피를 주며 물었다.


"언제 엄마 이야기 꺼내나 궁금했는데, 꼬박 2년이 걸렸네요."


"그래요? 왜 엄마 이야기를 기다리셨어요?"


"유난히 어색해하는 게 보였다고 해야 하려나. A씨가 평소 저에게 말하는 행동 패턴과 가장 다른 주제였거든요. 황급히 다른 소재로 넘어가려 한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거나. 언제쯤 엄마 이야기를 꺼내주려나 기다렸는데, 기쁜 날이에요."


"제가 그랬어요? 그건 아마 할 말이 없어서이지 않을까요. 엄마랑은 뭐 일이 없었으니까요. 아, 엄마가 예전에 아팠던 것 정도?"


"그렇구나,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요. A씨는 엄마를 떠올리면 어때요?"


"음, 엄마는 일을 좋아하고 이성적이에요. 그런데 웃기게도 어쩔 때 보면 애기 같아요. 저희 엄마가 5남매 중 막내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챙겨줘야만 할거 같아요. 막 물가에 애기 내놓은 것 같다니까요."


"그래요? 어떨 때 그렇게 느껴요?"


"뭐, 엄마가 세심한 편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진 못하거든요. 그래서 예전에 친척언니가 저한테 엄마한테 서운한 게 있다고 막 말한 적도 있어요. 엄마가 막내라 그런지 누굴 챙기고 그러는 게 어려운가 봐요."



그 말을 하면서 엄마가 아빠 장례식이 끝나고 내 손을 잡고 말했던 그날 밤이 떠올랐다. 문득 말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였을까.





아빠 장례식이 끝나고, 장례식장이 아닌 둘째 이모 집에서 다 같이 자기로 했다. 이모가 걱정된다며 자고 가라고 한 것도 있고, 엄마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한 것도 있었다.

거실에 큰 이불을 펴고 동생 둘 / 엄마 / 나 이렇게 쪼르륵 누웠다. 열두 시가 넘어갔지만 어쩐지 잠이 안 왔다. 동생들은 피곤했는지 코까지 골아가며 잠이 들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시험 접고 그냥 취업해야겠다. 교수님이 생각해 보라고 했던 그 자리, 그거 그냥 해야 한다고 해야겠다. 시험이야 뭐 나중에 보면 되지. 빨리 돈 벌어야지.


머리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속삭였다.



"A야, 자니?"


"깜짝이야. 엄마 안 자? 나 안 자고 있어. 잠이 안 와?"


"응, 엄마가 그냥 생각이 많아지네."


"왜, 무슨 생각. 우리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거야."


"맞아, 그럼. 어른스러운 우리 딸. 딸, 그런데 엄마가 너네를 생각하면 참 마음이 그래. 그리고 우리 A를 생각하면 더 그렇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뒤돌아 있던 몸을 엄마 쪽으로 돌렸다. 하도 울어서 목까지 잠긴 엄마는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많이 바빴잖아. 그래서 너한테 가장 중요한 시절에 엄마가 옆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애기들이야 아직 어리니까 지금부터 하면 되잖아. 그런데 우리 A는 엄마가 모르는 새에 너무 어른이 되었네. 엄마는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 하는 것도 어색하고 그런 거 있지. 그런 건 다 너희 아빠가 해서 엄마는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었나 봐. 이제 너희랑 아빠 없이 살려고 하니까 그동안 엄마가 못했던 것만 생각나.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엄마 노릇을 잘 못한 것 같아."


"아냐, 엄마. 우리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되지."


"맞아, 우리 딸이 엄마보다 더 어른스럽네. 엄마도 이제 더 노력할게."





다음 날, 엄마 차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했다.



"엄마, 갈게. 도착해서 전화할게~"



엄마는 쭈뼛쭈뼛 차에서 내리더니 갑자기 나를 안았다.



"우리 딸, 사랑해. 도착해서 엄마한테 전화해."



나는 흠칫 놀라 몸을 뒤로 뺐다.



"응? 응응. 전화할게."



그날 이후 엄마는 서툴지만 투박하게 애정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나를 챙겨주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은근슬쩍 대화를 피했다. 엄마의 노력을 단박에 받아줄 수 없는 내가 너무 싫었다. 엄마가 노력하는 게 눈에 보여도 이상하게 그걸 똑같이 받아주는 게 어려웠다.







길고 긴 얘기를 끝내자 목이 탔다. 생수 마시듯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한 잔 더 내려줄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A씨, 그거 알아요? 우리에겐 모두 행동 패턴이라는 게 있어요. A씨가 늘 먹던 커피를 거절해요. 그럼 저는 A씨에게 무슨 일이 있나 생각하겠죠?"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러겠죠?"


"반대로 A씨도 제가 만약 A씨의 말을 하나도 안 듣고 막 제 얘기만 한다고 하면 이상함을 느끼겠죠?"


"네네, 맞아요. 뭐 힘든 일이 있으신가, 생각할 것 같아요."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것은 행동 패턴과 굉장히 큰 관계가 있어요. A씨랑 어머니는 이미 오랫동안 이런 행동 패턴을 쌓아왔는데, 그걸 갑자기 깨뜨리려니 너무 어색한 거죠."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맞아요, 엄마가 그렇게 애정표현을 할 때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당연하죠. 처음 겪는 패턴이니까요. A씨, 그리고 엄마가 챙겨주는 게 어색하다고 했죠?"


"네, 제가 챙기면 챙겼지 엄마가 챙기는 것은 너무 어색해요."


"다음 주에 상담 못 온다고 했으니 2주 동안 숙제를 내줄게요."


"이것도 없던 상담 패턴이네요. 어떤 거예요?"


"2주 동안 딱 한 번이라도 엄마한테 '해 줘'라는 표현을 해 봐요. 그게 뭐가 됐든 상관없어요. 뭐 용돈 줘가 될 수도 있고, 그냥 막 어리광을 부릴 수도 있고."


"너무 어려운데요."



선생님은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숙제인 거죠. 그리고 A씨, 엄마의 역할을 뺏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엄마도 뒤늦게서나마 엄마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 건데, A씨가 그걸 뺏는 건 아닌지 잘 생각해 봐요. A씨가 어리광을 부려도 되고, 챙김을 받아도 되어요. 엄마가 힘든 것이 있으면 엄마가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지 A씨가 그걸 대신 견뎌줄 수는 없어요."



엄마의 역할을 빼앗는다는 말을 듣자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았다.



".... 네."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딸은 딸의 역할을 하는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A씨가 과연 숙제를 잘해올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하나 더, 엄마가 동생들과의 관계도 어렵다고 했댔죠? 그것 역시 엄마가 풀어야 할 숙제예요. A씨가 엄마의 엄마 역할을 할 필요는 없어요."






다음 날 본가에 내려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이제 내려가. 버스 탔어."


"응 그래, 조심히 내려와."



엄마 바쁠 텐데 이런 말 해도 되나 여러 번 생각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엄마 근데.. 있잖아.. 내일 나 닭발 만들어 줘. 닭발 먹고 싶어."


"... 응? 닭발? 당연하지! 지금 마트 열었으려나? 엄마가 내일 아침에라도 다녀올게. 우리 딸 먹고 싶다고 하는데 엄마가 잔뜩 만들어 줄게. 맵게 해 줄까, 달게 해 줄까?"



엄마의 신난 목소리를 듣고 무엇인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조금 달게 먹고 싶어. 그럼 엄마 내일 괜히 일찍 일어나야 하나?"



"뭐 어때. 엄마 원래 일찍 일어나. 우리 딸 먹고 싶다는데 만들어줘야지. 조심히 내려와."



어두운 버스 안에서 엄마의 들뜬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선생님 말이 맞네, 그동안 내가 엄마 역할을 뺏고 있었던 게 맞나 봐. 근데 진짜 어색하다. 그래도 이렇게 행동 패턴을 조금씩 깨다 보면 엄마한테 사랑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


다음 날 나는 본가에서 점심, 저녁을 모두 닭발로 먹을 만큼 많은 닭발을 먹었다. 엄마의 신남이 들어간 닭발은 어쩐지 평소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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