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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Oct 12. 2023

동행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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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에서 계속


[동행]     


“그래, 그랬구나. 그런데, 서윤아. 그래도 선생님은 네가 보고 싶기도 하고, 애들도 너를 궁금해하잖아. 공부도 잘하고, 평소에 밝은 네가, 건강하게 보이는 네가, 갑자기 며칠씩 안 오는 건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일단, 쌤은 간다. 내일 아침에 문자 줘라. 학교 가고 있다고, 그런 문자 기다릴게.”     


그렇게 말하고 서윤이 어머니와 어색한 인사를 하고 나도 나의 집으로 숨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선생님, 저, 오늘까지 그냥 집에 있을게요. 죄송해요.’     


가슴이 콱 막혀오고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막상 닥치니 심장이 아픈 듯한 그런 느낌이었지요.      


‘그냥 받아들여야겠지?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세상에 내가 뭘 어쩌겠어? 서윤이 엄마가 알아서 하시겠지. 휴. 힘들겠다, 엄마도.’     


애써 이렇게 세뇌하면서 가방을 들고 나왔습니다. 학교 쪽으로 걷다가 이른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을 마주칩니다.      


‘학교가 뭐 그리 좋다고, 저리 일찍 학교 가는 애들도 있는데, 참. 서윤이도 일단 학교에 오면 웃을 텐데. 어린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럴까?’     


나의 발걸음은 이미 그 아파트 102동 14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띵동’ 소리와 함께 서글픈,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출근하는 서윤이 어머니의 두 눈동자와 마주했습니다.      


“저, 서윤이 데리고 가려고요.”


“아, 선생님. 와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늦어서 먼저 가볼게요. 혹시 고집부려도 이해해 주세요. 그래도 선생님, 정말 정말 감사해요.”     


서윤이 어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바로 서윤이 방문으로 향했습니다. 출근 시간이 그리 넉넉한 것은 아니라 손을 내밀었을 때, 서윤이가 바로 거절하면, 할 수 없다, 그러고는 나올 참이었지요.      


“서윤아, 나다. 내가 친히 너를 데리러 왔다. 너랑 같이 등교하고 싶어서. 감동이지?! 하하.”     


어색하지만 용기 내어 씩씩하게 말해봅니다.      


“어, 선생님. 문자 보냈는데. 저, 어, 그래서 세수도 안 했는데요.”     


“알았어. 청소년, 기다려줄게. 눈곱만 떼라. 넌 피부가 하얘서 걍 먹고 들어가니깡. 지금부터 5분 준다. 시작!”     

웃으면서 말했지만, 살짝 서윤이의 눈동자를 살펴봅니다. 서윤이는 이상하게 눈빛보다 몸이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지금부터 10초 준다는 담임 선생님의 엄포에 반응하듯이, 재빠르게 화장실로 뛰어갑니다. 정말 2~3분 서 있었는데, 서윤이는 머리까지 단정하게 빗고 교복을 걸치고 씩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내 앞에 서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내려와 학교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야, 너 정말 영광인 줄 알아라. 쌤과 손잡고 등교라니. 서윤이 너니까 내가 같이 가주는 거야. 쌤도 오늘 학교 가기 싫었거든. 그래도 뭐 네가 진도 운운하며 얘기한 게 생각나서 말이야. 에잇, 참고 일단 가보자, 그렇게 생각한 거지.”     


“아휴, 선생님, 저 정말 놀랐어요. 저 체포하러 온 경찰 같았어요. 빨리 준비 안 하면 선생님도 제 침대에 누워버릴 것 같아서.”     


서윤이는 학교 가는 길 내내 수다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말이 많은 아이가 집에서 온종일 말없이 혼자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불편하고 마음이 불편했지요. 햇살이 비치고, 서윤이가 웃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상하게 과장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그래도 아이가 웃으며 등교하니 교복이 이쁘고 싱그러운 초록빛 나무 같았습니다. 같이 그렇게 등교를 하고, 서윤이는 학교에서 까르르 소리를 내기도 하고, 정해진 일과를 잘 소화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서윤이게서 아무런 문자도 없었고, 제시간에 등교해서 친구들과 웃고 있는 서윤이의 뽀얀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며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한 학기가 잘 마무리된 것 같아 담임교사로서 안도하고 그렇게 1학기를 닫았습니다.      


8월 말 2학기가 시작되고, 분주한 1, 2주가 지나면 9월입니다. 9월 말엔 보통 추석 연휴가 시작되고, 10월까지 이어지는 긴긴 휴일은 일상에서 벗어나 가을 하늘 푸르름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이기도 합니다. 방학이 끝나고 나면 변화가 뚜렷한 아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키가 훌쩍 큰 아이들, 딱 봐도 전형적인 청소년의 표정으로 바뀐 아이들. 서윤이는 성숙한 듯하면서도 뭔가 귀찮다는 듯한 눈빛이 간간이 비쳤습니다. “서윤”, 하고 부르면 성숙한 듯한 눈빛이다가 수업 중 창밖을 바라보는 그 아이의 눈빛은 무기력했습니다.     


10월이 되고 서윤이의 걸음걸이가 점차 느릿느릿 무거워졌고, 주 1회 정도 결석에서 이번엔 연속 2일 결석.      

‘내일도 결석하면 다시 가봐야겠다.’     


서윤이는 어제 보낸 문자에 ‘선생님, 죄송해요.’라는 답만 보냈습니다. 출근할 때 서윤이에 들릴 요량으로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가을의 쌀쌀함이 벌써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띵동’ 소리가 나고 한참 동안 답이 없습니다. 잠을 자나 하고 다시 초인종을 누릅니다. 안에서 서윤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네, 선생님, 잠시만요.”     


그러더니 서윤이가 교복 재킷 한쪽 팔을 끼우며 허겁지겁 문을 열고 나옵니다.    

  

“헤헤, 선생님, 실은 막 갈등하고 있었는데, 초인종 소리 나서 틀렸다, 생각하고 얼른 빛의 속도로 나왔어요. 잘했죠? 헤헤.”     


“야, 너, 인생을 이렇게 살래? 선생님이 모시러 와야 하냐? 알았다, 내가 알아 모시마. 내일부터 매일 오면 되는 거지?”     


서윤이는 멋쩍은 듯 웃으면서 교복 재킷 나머지 한쪽 팔을 마저 끼웁니다.      


“선생님, 얼른 가요.”     


학교 가는 길에 온통 노란 은행잎들이 가득합니다. 아직 풍성하게 매달려 있는 은행잎들, 바닥에도 수북한 노란빛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고, 은행잎들은 박수갈채처럼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소용돌이칩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저도 더 노력해 볼게요.”     


“그래, 그래야지. 사실, 집에서 있어봤자야. 너도 알잖니. 그리고 서윤아, 네가 할 수 없는 건 그냥 내버려 두고, 네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봐. 선생님이 볼 때 서윤이는 사고력도 좋고, 언어 감각도 있어. 또 네가 집중하면 끝판왕일 것 같은데 말야.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때? 외고에 도전해 보는 건? 나중에 좋은 대학 가면, 야, 너처럼 예쁘게 웃는 여학생한테 멋진 남자들이 줄 서서 데이트 신청을 할걸.”     


서윤이가 까르르 사춘기 소녀답게 웃습니다.      


“정말요, 선생님?”     


“야, 당연하지. 근데, 너 그거 알아? 자기를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너를 사랑해 줄 수 있고, 멋진 사랑을 할 수 있는 거야. 네가 너를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한테 해로운 건 잘 안 해. 오케이?!”     


하늘이, 그날의 하늘이 서럽도록 파랬습니다. 나의 진심이, 나의 이 바람이 서윤이 가슴속에 꼭 전달되어서 서윤이가 이따위 우울감을 벗어던지기를 간절히 바랐지요.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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