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배려 말고, 진짜 배려를)
벌써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등산을 하든, 밭일을 하든, 족구를 하든 선크림 하나 바르지 않고, 모자도 없이 말 그대로 ‘수수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디카로 찍은 내 얼굴을 컴퓨터 모니터로 본 순간, 온통 검은 점을 보고 깜짝 놀랐고 ‘점을 빼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의원을 찾아가 50분 동안 얼굴 점을 뺐습니다.
며칠 뒤, 일요일 아침.
얼굴을 보호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몰랐던 것이 밝은 교회 조명 아래서 선명히 드러났습니다. 하얗게 뜬 얼굴. 선크림 자국이 얼굴 곳곳에 선명했습니다.
권사님, 집사님들은 다른 말 없이 평소처럼 인사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유치부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집사님, 얼굴이 왜 그래요?” 내가 좋아하는 예찬이와 예성이도 한마디 했습니다. “얼굴이 추워서 얼었나 봐요.” 그 말에 나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예성이가 따뜻하게 녹여줘~”
그러자 예성이는 입으로 ‘호~’ 불면서 작은 손으로 내 볼을 조심스레 만지며 “녹아라~ 녹아라~”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날 오후,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어른들은 내 얼굴이 이상해 보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마 내가 상처받을까 봐 조심스레 배려해 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반면 아이들은 생각 없이 느낀 대로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솔직함 덕분에 나는 웃을 수 있었고, 다음엔 선크림을 더 잘 펴 바르겠다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른들의 ‘말하지 않는 배려’는 따뜻하지만, 그것이 ‘뒤에서 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면 오히려 아이들보다 못한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솔직함은 때때로 우리를 성장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어른들의 뒷말은 고칠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고 마음을 다치게 합니다.
누군가의 실수를 보았을 때 그가 상처받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해주든지, 아니면 끝까지 침묵하는 것, 그것이 진짜 배려 아닐까요?
예전에 읽은 책 속 문장이 문득 떠오릅니다. “남의 실수를 알아내는 것이 똑똑한 것이고, 그 결점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배려가 전해지고, 말할 때는 따뜻함을 건넬 수 있는 그런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반쪽짜리 배려를 하고 계시진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