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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n 13. 2024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점심을 두둑히 먹어서 소화도 좀 시킬겸 걸어가기로 했다.  


여유있게 천천히 걸으면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머릿 속에 가사 한 소절이 스쳤다. 

"~사이에 피어난 장미" 언젠가 카페 안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 같은데 가수도 노래제목도 도무지 모르겠다. 


무작정 "피어난 장미"를 검색했는데 바로 나왔다. 노래 제목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였다. 

반복 재생으로 걷는 내내 듣고 왔다. 


직관적으로 피어난 장미.를 검색했는데 바로 나와서 반가웠고 오늘은 이 노래를 들을 인연이었다.했다. 


나는 이렇게 별 거 아닌 것에도 인연이라 의미부여 하곤 한다. 


멜로디도 좋고 노래가사도 좋고 내 걸음도 리듬에 맞춰 신이 났다. 모든 것이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듯 그러면서도 완연히 조화로웠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꼭 나같다 생각했다. 


나의 이십대는 희망찼고 밝았다. 미래도 창창했다. 그러다 이십대 후반, 나는 어떤 생각이었는지.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호기롭게 나왔는데, 분명 건물 사이에 피는 장미.가 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에 부딪히니 나는 한없이 나약한 장미였다. 


롤러코스터 같이 아슬아슬했던 나의 서른이었다. 그러다 몇 년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 하염없는 세월을 극복하고 나니, 나는 어느 새 서른 중반이 되어있었다. 


지금 내가 그 안정된 수족관을 나오지 않았다면, 꽤 많은 돈을 벌고 모으지 않았을까. 돈.에서는 일정부분 자유로웠을 수도 있겠다. 이것도 착각이겠다. 방황했던 시절엔, 이런 착각들이 내 서른을 초라하게 했고 내 선택을 후회하게 했다. 


이제는 이렇다.

과연 그랬을까. 

또 다른 슬픔과 고통과 상처, 힘듦이 있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그러니 후회할 필요 없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 모든 삶을 사랑할 수 있는 것. 

내 모든 삶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 일 수 있는 것이다. 


괜찮다.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다. 

지금의 내.가 존재할 뿐. 

지금의 나.도 지나면 그때의 나.가 된다. 


지금 내 삶을 사랑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십대의 내가 쭉 평탄했으면 어땠을까. 

내 삶이 고생없이 쭉 잘되기만 했으면 어땠을까. 

나는 과연 성장할 수 있었을까. 

어른이 될 수 있었을까. 


내 대답은 노다. 

삶의 고통이 있었기에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하우스에서 피어난 장미보다 

나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에 대한 애정이 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이라는 고통을 꿋꿋하게 버텨내 

악착같이  건물 사이에 싹을 틔워 피어난 장미.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 삶이 더욱 가치있고 아름다운 게 아닐까. 


내가 원하는 배우자상도 이십대와 서른 초반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자기 삶의 고통과 상처, 아픔을 끝내 극복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자신 만의 순수를 간직한 사람.

인생의 고통을 경험해 본 사람. 

상냥한 사람.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같은 사람이었으면 한다. 


나와 같이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되기까지 

그 과정을 덤덤하게 무던하게 무심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 


꼭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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