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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n 14. 2024

남은 음식 포장해 오는 사람

내 삶의 가치관과 방향이 어느 정도 뚜렷해지기 시작한 후부터 내게 생긴 변화 중 하나는 먹을거리에 대한 소중함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는 점이다. 건강한 먹을거리에, 재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신선한 식재료로 건강하면서도 아주 맛있는 새로운 맛의 창의적인 요리 레시피를 만들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 날이면 어김없이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게 있으니, 그날 먹고 남은 음식이다. 특히나 수육이라든지 족발이라든지, 무엇이든 이렇게 먹다 남은 음식들은 어김없이 버려질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먹다 만 것이니 거부감이라곤 일도 없이 포장을 부탁해 꼭 챙겨오는 편이다.


내가 애정하는 얕고 튼튼한 스테인리스통에 가지런히 옮겨 담는다. 배가 고플 때, 끼니때 다른 음식과 곁들여 언제든 먹어도 훌륭한 한 끼가 된다. 그런 소소한 알뜰함에 기분좋아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음식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나의 의식적인 행위에 중독 되었다는 설명이 맞겠다. 


이제는 내 주변 사람들도 익숙한 모양이다. 남은 음식 꼭 포장해 오는 나는, 남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으며 음식을 챙겨오면 좋은 점들에, 외려 내 마음이 든든해지는 경험을 매번 하곤 한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웬만하면 내 가방에 들어있는 이 스테인리스 통이 훌륭한 남은 음식 포장용기가 되어준다.


어제 저녁엔 신세계 지하 푸트코트에서 이름이 제주흑돼지 야채롤이었던가. 무튼 맛있어보여 긴 롤 두개가 포장되어 있는 걸 냉큼 사서 친한 언니와 나눠 먹고선 거의 한 줄 좀 안되게 남아 잘 들고 왔다. 오늘 점심에 먹을 참이다. 김밥처럼 썰린 야채롤 3개와 메밀 콩국수 당첨이다. 이 얼마나 알뜰하고 좋은 일인가.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러하다. 내가 기쁘고 만족하면 되었다. 


나의 이런 태도는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음식도 그런 의미에서 마찬가지다. 감사하고 소중하다. 남은 음식을 싸와 야무지게 챙겨먹는 일은 어쩌면 소소한 작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겐 참 순간순간 알뜰함과 살뜰함과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귀한 행위다. 


내가 먹는 모든 식재료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릇도 그날 기분에 따라 음식에 따라 예쁜 접시에 담아 정갈하게 넘치지 않게 고이 가지런히 담아내는데, 그 모습조차 나는 좋다. 내가 차려낸 지금의 접시 위의 상태가 내 마음과도 같은 것 같아 흡족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 맛에 예쁜 곳에 예쁘게  담아내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들 외에도 두부 한 보를 먹더라도 전엔 꼭 소금간을 해 기름에 부쳐내거나 계란 옷을 입혀 부쳐내 먹곤 했는데 이젠 생두부 한 모를 가지런히 잘라 그냥 먹는 것이 훨씬 더 고소하게 느껴진다. 예전이라면 전혀 몰랐을, 생두부 한 점을 꼭꼭 씹어 의식하고 먹어보니 씹으면 씹을 수록 이토록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는 게 아닌가. 오이 역시 마찬가지다. 생오이 조차 심심하지 않고 생오이 본연의 진짜 맛이 이랬구나.를 느낀다. 


내가 느낀 건, 세상을 살아가는 저마다의 생활방식, 태도 등 그 모든 것은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생각이 단출하지 않은데 내 생활과 환경이 단출할 리 없다고 믿는 편이며 생각의 사특함을 경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내 생각과 마음상태가 곧 내 방의 상태이며 내가 먹는 것의 상태이며 내 몸의 상태이자 내 말투와 내 목소리와 얼굴 빛과 인상의 상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외면보다는 내면을 더욱더 가꾸려, 의식이 늘 깨어있으려 노력한다. 이렇게 내 삶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보니 뭐랄까. 굉장히 단단해지고 불안과 두려움이 이전과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결국엔 내 마음의 문제였던가. 나의 문제였던가.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릴만큼 내 삶은 아주 많이 변했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며, 앞으로 남은 인생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자, 나는 나대로 온전하며 소중하다. 내 삶을 살다 가자. 삶을 소풍처럼, 축제처럼 즐겨보자. 까짓 거 죽기 밖에 더 하겠어?라는 생각까지. 이런 긍정의 생각들과 에너지가 가득할진대, 우울이나 불안이나 두려움이 이따금씩 파도처럼 밀려온다 한들 서너 시간 왔다 어느 새 사라져버리고 만다.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 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선 부단히 보력하는 것, 부정적인 생각일랑 이제는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것, 어둠의 터널을 지나니 어느 순간 성장해 있는 내 모습이 참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인생은 알 수 없다.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 생각은 내 삶에 내 일상에 지친 일과 끝 먹는 달콤한 수제 아이스크림과 같다.   


내 안의 어둠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그땐 왜 그랬을까. 무엇이 날 그렇게 만들었을까.하는 싶지만 이젠 이미 지나온 그 시간들을 애써 곱씹으려 하지도 자책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때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음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지금부턴 오롯이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기로 했다. 한 번 뿐인 소중하고 귀하디 귀한 내 인생, 하루하루 순간순간 그 찰나에 집중하며, 그 찰나를 만끽할 것, 이 또한 변함없을 내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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