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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n 14. 2024

스몰 플레져

오전 9시쯤 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가 조카 둘을 유치원, 학교에 보내고 형부까지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시각이다. 


"초아야, 집이니? 밑으로 내려와!" 언니차로 잠깐 드라이브하고 카페 라떼를 텀블러에 담아 테이크 아웃해서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 사주려고 왔다고 했다. 신나기도 박장대소하기도 차분하기도 진지하기도 한 우리의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간단히 점심 요기를 하고 언니는 약속에 갔고 나는 원래 계획대로, 찜해 둔 파우치를 사러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준 언니는 돌아가는 길에도 자동차 창문을 내려 저 멀리서 내게 반갑게 인사했다. 덕분에 나의 오후는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했고 핫초쿄처럼 따뜻하고 달콤했다. 


지난 번 갔을때 갖고 싶은 파우치가 있었는데 그때도 본래 3,8000인데 빅세일해서 10,000원이었다. 가격때문에 고민했던 것은 아니고, 지금 쓰고 있는 파우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면 파우치가 둘이 될텐데. 찜해놓은 파우치는 필요가 아닌 순전히 디자인 때문이었던터라, 욕망.이라는 생각이 커서였다. 


그러다 조금 지나면 그 욕망이 시들해진다.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터라 사지 않았다. 


갖고 싶은데 사지 않은 것이,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 

생각이 자꾸 나는 것이,

샀을 때보다 더 큰 설렘과 행복을 줄 때가 있다. 


나는 그런 마음.을 즐기는 편이다. 

법정스님이 말한 맑은 가난.처럼. 

그런 것들이 날 행복하게 한다. 


그런데, 기존에 쓰던 파우치가 낡아졌고 각이 잡히지 않아 화장품을 넣고 뺄 때마다 불편했었던 터라 이번에 바꾸기로 생각한 것이다. 그렇담. 지난 번 찜해놓은 걸 사야겠다.했다. 


꽤 오래 전이니. 없을 수도 있겠고. 가격도 그 가격이 아닐수 있겠다.했지만 그래도 가보기로 했다. 

있다면 망설임없이 살 것이고, 나와 인연임이 틀림없다며. 기대와 설렘으로 버스 안에서, 가는 내내 행복한 기분을 만끽했다. 


결론은 나와 인연이었다. 딱 하나 남아 있었다. 


만 원의 행복이자 나만의 스몰 플레져였다.분명 내게 단 하나인 이 파우치를 귀하게 소중하게 생각하며 

잘 쓸 것이다. 여러개가 아닌 하나를 갖고 있으면, 소중할 줄 안다. 귀하게 여길 줄 알게 된다. 나는 그런 마음을 사랑한다. 


이 파우치 하나로 오후 내 마음이 이토록 행복할 수 있나. 이토록 기분좋을 수 있나. 이토록 부자된 기분일 수 있나. 분명 그렇다. 다 내 마음에 달렸다.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다. 


살아보니, 기쁨, 즐거움, 행복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 나와 내 일상, 내 삶, 내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달렸다는 생각이다. 


스몰 플레져는 스몰 해피니스고 스몰 낭만이다. 나의 하루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스몰 플레져를 만끽하는 것, 향유하는 것, 나의 현재를 더욱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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