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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n 15. 2024

흔들리지 않는 법

어제 미리 사놓은 피스타치오와 캐슈넛을 유리 밀폐용기에 채워 넣었다. 견과류가 풍성하게 담긴 유리병 2개를 보고 있자니 견과류 하나에 내 마음도 덩달어 가득 채워진 기분이다. 마지막 한 개까지 야무지게 비우고 나서야 뚜껑을 닫았다. 


엊그제엔 단호박을 사다놨는데 그러면서 생각했다. "난 단호박 참 좋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을 만큼 포슬포슬하게 쪄진 단호박 그 특유의 맛과 텍스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좋아하는 음식이 확실하다는 것,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인데다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로 직접 요리해 내 배를 적당히 채우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내 기분과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 


토요일 저녁, 써큘레이터가 집에 시원한 공기를 쐬어주고 포근한 소파 위에 기대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누구 부럽지 않다. 마치 신선놀음 하는 듯한 기분이다. 뭐든 내가 생각하기에 마음 먹기에 따라 내 상황도 달리 보인다는 것. 정말 맞다. 


최진석 교수님의 강연을 듣던 중,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는데 생각하는 인간, 사유하는 인간일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의식하려 하고 늘 깨어있으려고 한다. 


그때그때 스치는 단어나 문장들 혹은 주제, 소재가 떠오를 때면 메모 해두는 습관이 있다. 핸드폰 메모장이든 이면지든 대중 없다. 며칠 전 적어놓은 흔들리지 않는 법.이라는 문장이 토요일 저녁, 오늘의 글쓰기로 이끌었다. 


흔들리지 않는 법... 개인적인 경험으론 지리한 방황과 내 안의 나와 치열하게 이야기하고 대화하고 만나고 화해하면서 깨닫게 된 나만의 노하우랄까. 깨달음이랄까. 방식이랄까. 방법이랄까. 더 이상 쉽게 흔들리지 않는, 휘둘리지 않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는 설명이 맞겠다. 


더는 힘든 시간을 겪고 싶지 않다는 것, 더는 내 마음에 스스로 상처내고 싶지 않다는 것, 더는 내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런 감정과 기분이 내 몸과 마음에 잠식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와 다짐의 발로이기도 하다. 


흔들리지 않는 법.은 결국 내 안에 답이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 


나라는 사람은 가령,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편안한지. 행복한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기분 좋아지는지. 어떤 옷을 입을 때 나다운지. 어떤 헤어스타일이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어떤 종류의 커피를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 어떻게 하면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삶의 목적이란 무엇인지. 어디를 갈 때 기분 좋아지는지. 어떤 물건을 살 때 좋은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하나하나씩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자 그럴수록 나.라는 사람이 더욱 선명해지고 뚜렷해졌다. 


그러다보니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지금, 혼자 놀 때 가장 재밌는, 혼자서도 잘 노는 내가 되었다. 이 과정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는데, 덕분에 지금은 흔들리지 않는 내가. 혼자서 우뚝 설 수 있는. 비로소 "나"로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를 만났다. 

지금의 나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문장이자 내가 내린 문장이다. 


내가 생각하는 삶이란, 그 정이나 의미나 개념적인 측면에서도 이전과는 크게 변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 이 사실을 인지하고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실제 우리 삶은 크게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의 나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는 일이 없다. 살면서 느끼는 것들이 이렇게 많아서야... 할 정도로 많아졌는데 그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남들의 시선, 신경 쓸 일이 전혀 없다는 것." 스치듯 우연히 보았던 쇼츠 영상에서 길거리에서 만난 은퇴한 시니어들에게 이십대의 당신으로 돌아간다면 자기 자신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두려워 하지 말고 용기내 무엇이든 도전 해 볼 것."과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끌 것."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공감했고 반대로 내 스스로에게 되묻기도 했다. 


먼 훗날, 오십이 넘은 내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과연 나는 지난 서른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내게서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 내겐 많은 여운이 남았던 영상이었다. 


사실 살면서 흔들릴 때가 많다. 멘탈은 거센 파도같고 어떨 땐 갑자기 찾아온 변덕스런 기분, 우울감, 실체 없는 불안으로 인해 하루 종일 내 마음이 바닥일 때가 여전히 있다. 그때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의 지속성과 주기가 이전보다 확연하게 줄어든 이유는, 의식적으로 깨어있으려고 하는 내 마음의 의지 덕분이다. 마음 근력 훈련 덕택이고 몸의 움직임, 운동과 명상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마음 근육도 습관이다. 

지리한 방황을 끄끝내 극복하면서 내 마음 근육도 촘촘하게 잘게 튼튼하게 잘 만들어 놓은 덕분이다. 


의도적인 삶, 의미 있는 삶, 결국엔 그 목적의식은 다 하나다. 내가 생각하는 흔들리지 않는 법의 핵심은 감정은 내가 아니다.라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다. 감정이 내 몸과 마음을 잠식해버리는 순간 나는 어김없이 우울과 불안에 휩싸인다는 걸 너무도 잘 깨닫고 확신하게 된 지금, 알아차림. 현재에 집중하기.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 현존하기.를 수시로 소환해 내 몸과 마음을 지키고 있다. 


거창하지 않다.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어둠의 그림자가 쓰윽 하고 날 찾아온다 싶으면 혹은 이미 찾아왔다면 우선 몸을 움직이는 것. 내가 하면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아주 사소한 걸지라도 기꺼이 해보는 것. 내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 하나 해주는 것. "너, 또 왔구나!."하며 그냥 잠시 왔다 가라며 툭 놓아버리기. 의연해보기. 초연해보기. 남들과 비교하지 말기.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쓰지 말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기. 날 위한 만찬을 준비해 보는 일...등 날 분주하게 하면 감정이라는 녀석이 금세 사라져 버리고 없다.


나만의 삶의 취향과 가치관과 결과 태도가 선명해지면, 남들과의 비교는 커녕 사사롭거나 사특한 마음이 날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결국 흔들리지 않는 법이란, "나를 아는 것, 나를 알아가는 것."과 같다. 


"남들의 시선이 뭐 그리 중요했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아닌지... 이제라도 알았으니, 더는 내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흘러가는 대로 무심하게 그렇게 여행처럼, 소풍처럼 살아보자." 하곤 혼잣말을 한다. 


죽음이라는 걸 선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이 더욱 의미있고 가치있고 수중하고 귀하게 다가왔다. 유한한 인간 삶에서,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실히 깨닫고 있는 이 시점에, 흔들리지 않는 법을 습관처럼 훈련하는 일은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지금의 이런 나로 사유할 수 있어서, 사색할 수 있어서, 나만의 언어를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감사하니 그 감사함이 내 삶의 행복과 기쁨과 단단함과 의연함과 초연함, 유연함으로 배가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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