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erplate Jul 05. 2024

모든 것은 그대로 온전하다

어제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하늘은 아름다웠다. 순간 죠스바가 떠오른 건 무엇. 죠스바 겉의 회색빛과 죠스바 속의 핑크색 같았다. 베르사유궁전 근처 역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창가 너머 바라봤던, 그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으로도 담았던 그 하늘과 똑같았다.


책을 읽다 말고 그 하늘에 푹 젖었다. 조용한 길가로 일부러 돌아 걸었는데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까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가 걸음 속도를 아주 서서히 낮추곤 오른쪽으로 펼쳐진 하늘을 보는데,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을 느꼈다. 기분좋은 숨막힘이랄까. 아.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라는 소리가 내 안에서 절로 나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인데, 뭐가 그리 걱정이고 불안하니?


드높은 풍경을 보는데, 순간 하늘로 꼭 빨려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마치 하늘과 이 우주와 하나가 된 듯한 것이었다. 아름다웠다. 평온했다. 고요했다. 온전히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이 순간에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하늘은 그대로인데 먹구름이 끼었다고 해서 하늘이 아닌 것처럼, 먹구름이 걷어지면 하늘이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처럼, 바다는 그대로인데 파도가 인다고 해서 바다가 아닌 것처럼 파도가 물러가면 바다가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처럼. 퇴근 길 스치며 지나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도, 사유가 몰아친다. 모든 것은 그대로 온전하다.


요 며칠 순간순간 우울한 감정이 불쑥 일었다. 즉각 알아차리곤 몸의 움직임과 그저 바라봄으로 해소했는데, 늘 효과가 있다. 알면서도 생각의 놀음에 마음의 놀음에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다행인 건 알아차림의 습관 탓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야 몇 초 몇 분이라는 것과 더는 속지 않는다. 더는 착각하지 않는다.라는 의식으로 생각과 마음이 이내 설 자리를 잃고 물러간다는 것이다.


생각은 내가 아니고 생각이 이는 것 조차 자유의지가 아닌데, 살아가면서 이런 줄다리기는 피할 수 없는 것이란 걸 깨닫는다. 생각은 감정이 되고 감정은 내 몸의 컨디션을 조정한다. 피할 수 없는 생각과 마음의 작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럴수록 내면에 주의를 돌리는 것.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기. 마음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기.다.


원래도 일찍 자는데, 요즘 부쩍 저녁 10시면 잠에 든다. 어제도 9시 반 좀 넘었을까. 소파에 누웠는데 잠이 스르르 쏟아졌다. 몇 페이지 안남은 책을 마저 다 읽고 자야지 했는데, 잠이 쏟아져 곧장 침대로 향했다. 그러곤 눈떠보니 아침이다. 이토록 개운한 꿀잠일 수가 없다. 잠을 잘 자니 사특한 생각이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 와도 번지수를 잘못찾은 듯 쉬이 물러간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니 오전 5시 44분이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게 자연스런 루틴인데, 숙면 덕분에 피부도 매끄럽다. 피부도 오케이. 눈빛도 오케이. 눈동자의 맑음도 오케이. 이런 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고 에너지가 생긴다.


사람의 기. 기운. 분위기. 아우라. 매력은 눈빛에서 나온다. 눈빛이 중요한 이유는, 눈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눈에서 그 사람의 많은 것이 읽혀질 때가 있다.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기운이 탁하거나 나와 기가 맞지 않으면 피하고 싶어진다.

 

밖을 나가는 순간,   앞에 펼쳐진 풍경이 어쩜 이토록 아름다운지. 환한지. 빛나고 있는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적인지. 내가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적인지. 이미 기적 하나를 안고 사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불안한가? 무엇이 우울한가? 무엇이 걱정되는가? 집착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어떤 것도 본래 내것이 아닌데 무엇에 집착하는가? 세상 만물이란, 온통 내겐 깨달음의 장이다.


내 안의 세계가 내 안의 우주가 평온하면, 내 앞에 펼쳐진 외부세계도 평온하다. 내면과 외면은 다르지 않다. 하나다. 내부세계와 외부세계는 하나다. 어느 것하나 다름이 없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다.


모든 것은 그대로 온전하고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문제는 항상 조건화되고 개념화된 물질이 나라는 착각과 생각이 나라는 착각, 마음이 나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내 안의 두려움도 불안도 결국 집착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들여다볼 줄 아는 지혜와 통찰은 현실을 좀 더 촘촘하게 농밀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이 현시의 작용과 세상 돌아가는 원리, 우주의 작용을 직관적인 앎을 통해 주시하면 매 순간 체험되어지는 일이 왜 일어나는지.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초연해지고 무심해지고 허용할 수 있게 된다.


이 순간의 나.로 머무르기. 나도 세상도 그 어떤 것도 잘못된 것은 없다.

이전 04화 모든 것은 인연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