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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l 06. 2024

행복은 상태다

비우면 비울수록 난 왜 더 풍족해질까. 풍요로움을 느낄까.


작은 것에서부터 비워내기를 곧잘 하는데, 비우고 나면 이토록 충만함을 느끼는지. 이른 아침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한 토요일 아침, 비워낼 것은 없는지. 불필요한 것은 없는지. 사용하지 않는데 그냥 두고 있는 물건이 없는지 둘러본다. 


이 아침 카페 라떼 한 잔이 이토록 고소할 수가. 달콤할 수가 없다. 부엌 너머 새들의 지저귐이 울려 퍼진다. 성시경과 박정현의 우리 참 좋았는데.를 재생했다. 이 노래가 날 불렀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가사에 흠뻑 젖었다. 나와 기운이 잘 맞는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효과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같은 용도의 물건을 하나 이상 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집안 살림이 조촐한 편이다. 사는데 불편하지 않으니, 딱 이정도의 살림살이가 내 삶을 더욱 안정감있게 해준다. 이 또한 나만의 질서다. 


법정 스님의 "사람은 저마다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늘 가슴속에 새긴다. 나만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이로운 것인지. 셀 수 있을 정도의 물건을 갖는 게 내게 이토록 알맞는 것이었는지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젠 물건이 많아지면 피로감을 느낀다. 옷도 눈에 들어올 정도로 단출하고 새 옷을 사는 일보다 내 몸을 건강하게 날씬하게 관리하는 것이 더욱 즐거움을 준다. 요리하는 것 치곤 이토록 단출할 수 없는 부엌 살림살이. 그릇과 집기도 한 눈에 들어온다. 이마저도 부족하지 않다고 느끼니 순전히 내 마음에 달렸다. 


모자도 캡 하나, 우산도 하나, 어느 것 하나 두 개 이상이 없다. 쿠션 딱 하나다. 이런 삶의 태도와 취향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고 내 생각이 단출해지니 절로 내 살림살이도 단출해졌다. 군더더기 없는 라이프스타일이 자리 잡았다. 앞으로 나의 마흔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새벽배송된 꾸덕한 그릭 요거트 6개를 냉장고에 채우면서도 요것 하나에 어쩜 이토록 든든한 마음인지. 풍족한 마음인지. 날 보면 사람 변하는 거 맞다. 변할 수 있다.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착실히 활용중이다.  


조금 전 블루베리를 먹으면서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걸 느끼면서 꺄악. 넌 어쩜 이렇게 맛있니? 내 안으로 들어가면 생명이 되겠구나. 날 이롭게 해주겠구나.한다. 이런 방식으로 곧잘 세상 모든 것들과 대화하곤 한다. 아무렴 어떤가. 너와 나는 다르지 않는 걸. 너도 생명이고 나도 생명인데 내가 너고 너는 나인데. 


관점을 달리하면 인식을 전환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늘 가던 길도 관점을 달리하면 새로워 보이고 늘 보는 풍경도 관점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생경함으로 다가온다. 여느 날 같은 토요일 아침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렇게도 비틀어보고 저렇게도 비틀어보면 이토록 재미날 수가 없다. 룰루랄라.하는 마음 결국 환경이 아니라 내 안에 달렸다. 


혼자서도 잘 노는 여자. 스스로에게 절로 나오는 말인데, 혼자만의 시간이 내겐 이토록 평온하고 고요하고 즐거운지 모르겠다. 행복은 내겐 조건이 아니라 상태다. 토요일 오전 잔잔하게 여기에 머무름. 그 자체만으로 그저 충만함을 느낀다. 행복감을 느낀다. 이것이 행복 아니고 무엇일까. 


내 안에서 충만하면, 내면에서 충만함이 올라오면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감사함과 다정함이 올라온다. 


아침 일찍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간단하게 아침도 먹고 커피 한 잔도 마시고 책을 읽으며 공원 산책도 하고 왔다. 집 앞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조금 전 방울토마토와 청양고추, 찰옥수수도 사왔는데 이제 겨우 열시다. 이런 것에서조차 충만감을 느끼니. 나는 이런 사람인게다.싶다. 


순간순간 작은 성취감을 맛보는 일. 시간도 촘촘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내 하루가 전반적으로 굉장히 알뜰해지고 살뜰해진다. 그 살뜰함이 내겐 꼭 알맞는 것이었다. 


아름답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이런 나도 아름답고 너도 아름답다. 그러니 더욱 상냥해질 수밖에 더욱 다정해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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