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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l 06. 2024

내면의 확장  

멀쩡하던 컴퓨터가 순간 멈췄다. 순식간에 검정 화면이 나타났다. 껐다 켜보아도 작동되지 않는다. 뜨악. 순간 당황했다. 신기한 건, 그 찰나 내 머릿속은 수만가지 생각으로 덮인다는 것. "어떡하지? 고장났나? 으악 안돼. 새로 사야겠지? 윽 괜히 목돈이 나가게 생겼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패드로 바꿀까? 아니야 나와는 맞지 않았어. 노트북이 나아. 맥북을 살까? 내일 아침에 다시 켜보면 되지 않을까?에서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날 잠식해버린다. 알아차리면 된다. 인사이드 아웃3가 나온다면 생각이.를 추가해야 한다^^


참 생각이란, 내가 어찌할 수가 없구나. 이렇게 또 다시 체험한다. 결론은 다시 켜졌다. 멀쩡해졌다. 불과 10분도 채 안 된 시간에 말끔하게 해결됐다. 키 하나와 전원을 함께 눌러봤는데 어맛 본 화면이 떡 하니 나타났다. 이토록 싱겁기 있기 없기. 무튼 조금만 인내하면 바로 켜 질 일이었던 것이다. 아직 나와의 인연이 남아 있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움. 쓸데없는 걱정이 일었지만, 몇 번을 켜보아도 그대로인 것 같아 이내 마음을 내려놓았던 터였다. 그러곤, "나와의 인연이 다했나보구나. 오래되었지. 그동안 함께 해줘서 고마워^^"라고 얘기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놓아주는 일 밖엔 없지 않은가. 그러면서 의식했고 의도했다. "초아야, 걱정 내려놔. 이미 벌어진 일이잖니? 노트북은 너에게 꼭 필요한 것이니 새로 사면 되고. 걱정할 게 뭐 있어. 새 노트북을 결정하기 까지 며칠만 조금 불편하면 되잖아? 잘됐다. 오늘 저녁엔 침대맡에서 책을 마음껏 읽어야지."했다.


TV도 잘 보지 않으니, 노트북은 글쓸 때, 내 취향의 유튜브 콘텐츠를 보는데 사용하는 것이었다. 노트북이 고장났으니 책에 조금 더 집중할 시간이 많아졌다고 생각을 전환하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마음이 고요해졌다.  


노트북이 순식간에 고장난 건 예상 밖이었고 내 통제 밖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 상황에 대한 태도와 반응은 내 통제 영역이다. 요즘 이런 상황들이 발생하면 나만의 실험을 한다. 오호라. 이런 일이 일어났군. 그렇담. 요렇게 저렇게 생각을 전환해버린다. 연습이고 훈련이고 실험이다.


마음을 곱게 먹으니. 마음을 다정하게 먹으니. 마음을 훅 내려놓고 몇 분 쯤 지났을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전원을 눌러보자. 그때도 안되면 뭐 진짜 안녕이닷.하면서 키와 전원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다시 켜질거라 전혀 예상하지 않고 한 행동이었는데, 마법처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너무 간절하면 집착하면 될 일도 더 멀리 달아난다. 살면서 느낀 건, 오히려 집착하지 않았을 때 내려놓았을 때 일이 더 잘풀렸다. 집착은 두려움의 원인이고 그 두려움으로 긴장하게 되면 외려 일을 그르칠 때가 많았다.

가령 면접에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간절한 나머지 여기에 꼭 붙고 싶은 나머지 그 간절함이 오히려 긴장하게 만들어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는 것처럼. 집착하지 말 것.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다.  


내려놓았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해결되었다. 내려놓았는데 일이 잘 풀렸을 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었을 때 기쁨은 배가 된다. 감사할 줄 알고 소중한 줄 안다. 방금처럼 노트북이 갑자기 정상 작동돼 다시 나와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마음의 큰 동요없이. 그저 기꺼이 받아들이면 된다.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고 받아들이고 감사해하고 알아차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크고 작은 지혜를 얻는다.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그 상황을 바라보는 것. 마음 근력을 키우는데 효과적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통해 마주하는 스트레스와 괴로움도 알아차림을 통해 해소해 나갈 수 있다. 인간관계란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상호작용이 아닌가. 상대가 나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너무도 부서지기 쉬웠던, 깨지기 쉬웠던 유리창 같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 알고 있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을 만큼. 그 시절의 나는 여렸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었다. 그땐 왜 그토록 타인의 시선에 상처받고 아파했는지. 안쓰러움이 있다.


가끔 그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하곤 한다. 그 시절의 나에게, "초아야, 걱정마. 십년 후엔 넌 단단해졌고 성장했고 씩씩하게 자기 생을 살아가고 있어!"라고 말해준다. 그러곤 재빠르게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온다.


명상을 하다보면 매 번 느낄 수 있다. 명상을 하고 난 뒤 시계를 보면 어느 새 15분 20분이 지나있다. 분명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10분 15분이 훅 지나있다니. 늘 경험하지만 생경하게 다가온다.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시간성이 아니라 공간성에 존재하고 있는게 아닐까.하고.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고.


명상은 이런 방식으로도 내면의 확장을 위한 훌륭한 도구가 되어준다. 서른 일곱의 나는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안다. 작은 것에도 감동받고 감사해하고 감동하고 감탄한다.


사실 행복엔 조건이 없다. 무엇을 가져야 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그것은 조건이지 행복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내게 행복이란 상태다. 평화롭고 평온하고 편안한, 마음의 균형이 조화로운 상태고 순간순간 기분좋음의 상태다. 무엇을 가져야지만이 무엇을 해야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 순간순간 모든 것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내면의 확장에 진심인 이유도 이런 것이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습이 습관이 되면,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는 즐거움이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 경험되어지기 위해, 체험되어짐으로써 성장하는 것. 궁극적 깨달음과 지혜로 가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하루에 몇 번이고 글쓰기를 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 사색과 사유를 달리 풀어낼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순식간의 몰입으로 이렇게라도 휘몰아치게 써내려가지 않으면 아니게 되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해소되는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글쓰기 괴물이 잠에서 깨어나는 때, 내 글쓰기가 시작되는 때다.


토요일 밤, 잠에서 깨어나기 있기 없기. 글쓰기는 어떤 이유에서든 내게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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