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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l 08. 2024

비에 젖으면 젖는대로

청반바지를 입었다가 나오기 직전 롱 스커트로 갈아입었다. 아무래도 스커트가 더 편해서고 거센 비가 아니라 크게 젖지 않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


도착지에 거의 다다를 무렵,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아닌가. 비장하게 우산을 펴들었지만 비에 젖음을 피할  없다는   알고 있었다.  발자국 가지 않아 흠뻑 젖었다. 2  걸었을까. 치마 밑단이 허벅지와 종아리에 달라붙어 바지 형상이 되었다.  모습에 신이났다.  덕분에 순수한 아이로 돌아갔네. 이왕 젖은거 될대로 되라. 첨벙대며 걸었다. 촥촥. 꺄악 비도 너의 역할을  하는 거겠지.


비에 젖으면  떤가. 일련의 사건일 . 내게  될것이 없다.  자체는 문제가 없다. 누군가 비에 젖는  싫다면, 두렵다면, 나는 기꺼이 비를 맞아보라고  것이다. 흠뻑 젖어보면 금세 순진무구한,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느끼게  것이다. 비를 맞으니  다른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은가. 하나를 잃는게 아니라 하나가 채워지는 것이다.  


젖으면 말리면 되고 무엇이 걱정인가. 무엇이 대수로운가. 빗방울에 젖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도 비오는 날 밖에 나가 여느날처럼 첨벙대며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 비에 홀딱 젖은 생쥐가 되기 일쑤였고 성인이 돼서도 퇴근 길에 비라도 오면 여의도역에 내려 한강시민공원까지 걸어가 집까지 우산도 쓰지 않고 냅다 달리곤 했다.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비와 하나가 되곤 했다.


여전히 비를 사랑하고 우산 없이 갑작스런 비를 맞이해도 흔들림이 없다. 우산이 없으면 맞으면 되고 맞기 싫으면 우산을 사면 될 일이다. 내 걱정이 걱정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걸어오는 길에, 혼잣말로 "아름다워. 꺄악 신나. 이 또한 우주의 선물이겠지. 내가 사는 세상이 어쩜 이토록 아름다워 보이니. 초아야 너 맞니?^^"하곤 더욱 신나게 또렷하게 비와 놀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건, 비에 젖으면 젖는대로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절로 펼쳐지는 삶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맡기는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수용하는 것.이겠다.


내게 늘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남에게 일어나는 일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고 내게  일어나는 일이 남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내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바람과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맞다. 그보단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괜찮아.의 마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굳은 심지. 단단한 마음 근력을 쌓는데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유리하다.  


비에 젖지 않으려고 애쓰면 외려 순식간에 비에 흠뻑 젖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인생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있던가. 순간순간 펼쳐지는 체험을 있는 그대로 바라봄이 이롭다. 비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기꺼이 이 비바람을 맞겠다는 비장함도 필요하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세상에 생각보다 더 많이 치마 밑이 다 젖어있다. 아무렴 어떤가. 촉촉함이 불편함이 아닌 이유는 몇 십 분이면 금세 말라 제자리를 찾을 것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떨 땐 일부러 우산을 쓰지 않기도 하는데, 비에 흠뻑 젖어 냅다 달리고 난 뒤의 그 멈춤이 주는 생경함이 좋아서기도 하고 비를 그렇게 흠뻑 맞고 나면 비라는 생명이 내 온 몸을 적신듯한 기분에, 생명의 기운, 하늘의 기운, 온 우주의 기운을 직접적으로 받는다는 기분에서다.


모든 것은 전체성이다. 서른 후반에 마주한 내면의 고독과 성장이 이런 방식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수시로 크고 작은 지혜와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사색도 사색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사색도 절로 펼쳐지는 것이란 걸. 고독과 성장의 과정에,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에 너무도 자연스런 과정이란 걸 깨닫게 됐다. 이런 사색은 한 번 시작되면 멈춰지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나처럼. 사색은 그렇게 나와 하나가 됐다.


앞으로도 비에 젖으면 젖는대로, 눈보라가 일면 눈보라가 이는대로, 폭풍우가 오면 폭풍우가 오는대로, 파도가 일면 파도가 이는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 일 것이다. 거센 파도를 마주하는 일이 운명이라면, 그런 내 운명까지도 사랑할 것이다. 내맡김. 받아들임. 바라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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