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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l 08. 2024

매일이 선물

먹는 것만 바꿔도 피부톤, 피부결이 다르다. 건강한 음식들로 균형있게 잘 먹으면 피부도 부들부들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피부도 깨끗해지고 맑아지고 몸도 가볍다. 몸냄새도 다르다. 몸이 절로 반응한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깨끗한 피부에 절로 기분좋아진다. 피부톤이 본래 까무잡잡한 구릿빛 피부다. 여름이면 태닝했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타고난 피부톤이 어두운데, 그렇다고 피부톤이 하얗기를 바란적은 없다. 타고난 모습 그대로 만족하는게 이롭다. 대신 피부의 낯빛만은 맑게 유지하려고 한다.


시력이 이전보단 안좋아졌다는 게 부쩍 느껴진다. 좀 뻑뻑한 감도 있고 빛번짐이 심해졌다. 자연스런 노화인가.싶다. 렌즈를 끼거나 안경쓸 정도는 아니지만, 빛번짐이 심할 때면, 문득 눈의 노화에도 마음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참 지나선 자연스레 안경을 쓰게 될 날도 있을 수도 있겠다.싶다. 그러고보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쓸데 없는 걱정이 대부분이다. 알아차린다.


목의 주름도 손등의 주름도 만만치 않다. 눈가의 주름엔 화들짝 놀랄 때가 있으나, 받아들인다. 서른 초반만 해도 마흔은 아주 먼 이야기 같았는데, 금세 서른 후반이 됐다. 젊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니 아쉬워하지도 씁쓸해하지도 말지어다.


월요일 아침 9시 30분 스케일링 예약시간에 맞춰 치과에 갔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벗삼아 뚜벅뚜벅 걸어갔다. 비를 유독 반기는데, 비오는 날의 정서, 분위기. 그 어두컴컴하면서도 축 가라앉은 것이 쨍한 날보다 이 우주가 날 더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한, 안아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챙겨갔다. 어딜가도 책을 들고 다니면 좋은 것이, 지루할 틈이 없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조금 더 기다리게 되는 상황이 와도, 화나지 않는다. 짜증나지 않는다. 책을 좀 더 읽을 수 있겠군.한다. 책과 함께 하는 순간 여유가 찾아온다.


여유는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여유는 무언가를 가져야만 닿는 것이 아니었다. 풍족해도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고 풍족하지 않아도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 있다. 여유는 찾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됐다. 진심으로 진정으로 자기에게 자기 생에 대한 풍요로움과 감사를 오감으로 느끼는 것일 때 찾아온다. 여유로움은 내면의 단단함, 다정함, 마음의 균형과도 동의어다.   


스케일링 한 지 벌써 일 년이 됐다니. 꺄악 지나간 기억 앞에 또 한 번 생의 유한함을 이런 방식으로 확인한다. 스케일링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의사의 검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삼십분 정도 기다린 듯하다. 그럼에도 마음의 동요가 없었던 것이 조금만 기다리세요라는 직원의 말과 동시에 책을 꺼냈기 때문이다. 의자도 편안했고 책을 읽기에 최적의 상태이지 않은가. 이토록 평온한 시간일 수 없었다.  

  

의사의 한 마디, "에고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꽤 기다린 걸 아는 듯했다. 미소 짓는 수밖에. 이가 튼튼하고 이상없다는 설명도 들었고 순조로웠다. 치과를 나서곤 1층에서 우산을 쫙 펴고 건물을 나가는 순간, 왠지 모를 뿌듯함과 개운함은 무엇. 무언가 하나를 순조롭게 마쳤다는 뿌듯함이었다.


아침 일찍 예약한 스케일링 검진을 미루지 않고 지켰다는 것도 있고 내 이건강을 위한 걸 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랄까. 안정감이랄까.


행복은 순간순간이다. 기분좋은 상태일 수 있고 관점을 달리하면, 인식을 전환하면 순간순간 행복 아닌 것이 없다. 비오는 아침 집을 나서면서도, 내 취향의 우산을 쓰는 것, 책 읽는 것, 상냥하고 친절한 모드인 것, 오는 길에 찰옥수수를 사온 것, 오자마자 옥수수를 삶는 것, 노트북을 켜고 글쓰는 것, 완료된 세탁물을 꺼내 탈탈 털어 너는 것, 소파에 기대 스트레칭을 하는 것... 내겐 행복은 이런 류다. 부분이 아닌 전체성이다.


잠깐 새 읽어 내려간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인간 삶에서 시간은 점 하나요. 육체는 흐르는 물과 같다."는 문장이 와닿았다.  


집에 돌아온 지금, 찰옥수수 3개 커피 한 잔, 창밖너머 들려오는 빗소리. 모든 것이 조화롭고 그대로 온전하다.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너무 기뻐하지도 말고 너무 슬퍼하지도 말 것. 무심한 상태가 삶의 태도가 되었는데, 무심함이란 펼쳐지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수용하기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걱정할 게 무엇이 있는가? 내 삶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기는 괴로움과 고통에 더는 휘둘리지 말아야 겠다는 의지다.


비오는 하늘을 바라본다. 비는 어쩜 이토록 뚝뚝 떨어질까. 비는 이 땅에 내려오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이 땅을 어떻게 바라볼까. 비가 바라보는 이 세상은 어떤 색일까. 흐린 날씨에, 먹구름에 하늘이 가려졌다. 먹구름에 가렸다고 하늘이 사라진게 아닌 것처럼, 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나에 대입해본다. 부정적 감정과 마음이 날 흔들어댄다 한들, 검게 물든다 한들 진아(True self)는 사라지는 게 아니란 걸. 영원성이란 걸.


매일이 새롭다는 건, 상황이 달라져서가 아니다. 상황 자체는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변화한 것이다. 내게 일어난 혹은 절로 펼쳐지는 상황들에 대한 내 태도와 반응이 바뀌면 전혀 다른 현실이 나타난다. 여느 날과 같은 월요일 아침도 순간순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새로운 순간들이 체험되어진다.


입으면 기분좋아지는 옷을 입는 건 내 통제 안의 일이다. 청 반바지와 고양이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었다. 비가 오니 반바지를 입어야겠다. 오늘은 이 가방을 들어야지^^ 작고 사소해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마음 껏 취향 껏 선택하면 룰루랄라.신이 난다.


누가 날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인정욕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나다워진다. 누군가는 내게 상처줄 순 있어도 상처받지 않는 건 내게 달렸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 것들이 이토록 많아서야.싶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감사한지.


감사함이 야물게 내 오감에 스며들었다는 것. 감사함으로 내 삶이 촘촘하게 물들여 있다는 것.

매일이 선물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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