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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l 11. 2024

삶과 죽음은 같다

여름소리가 쉼없이 들린다. 그 특유의 여름소리. 이 계절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하나. 어느 순간 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한 감정이 몰려오면 재빠르게 알아차린다. 최근 무엇을 먹었는지. 돌이켜 본다.


곧잘 알아차리면서도 우울한 감정이 문득 일때면 단 몇 분이라도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요 며칠 그랬는데, 몸을 움직여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고소한 라떼로 마음을 달래본다.


자주 들리는 공원이  있다. 작은 규모의 공원인데다 한적하다. 나 혼자일 때가 대부분이다. 마치 그 공원은 날 위한 선물같다. 그곳에 들릴 때면, 마치 새로운 세계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걷다보면 입구가 나오는데,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세계단이 있다. 발걸음을 의식하며 내딛을 때마다 오호, 곧 입장한다.며 설레한다. 그 묘한 기분과 신비로움과 경외감이 좋아 자주 들른다. 그곳 벤치에서 눈을 꼭 감고 명상에 잠기는 일도 익숙하다.


십여분 눈을 감고 있다 떴다. 뿅하고 현실이 내 앞에 나타났다. 영화관 스크린과 같다. 눈을 딱 떴을 때 숨죽인 듯한 고요와 푸르스름한 풍경. 나는 그 몇 초 간의 정적을 이토록 사랑하게 되었다.


집을 나서면서 혼잣말을 했다. 자연을 만나러 가야지. 자연을 만나러 가는 길, 자연 안에 있는 일,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일은 마음을 되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버스 안에 파리가 날아들 일이 많지 않은데, 맨 뒷좌석 가운데 앉아 이동중에 책을 읽고 있었다. 쫙 펼쳐진 책장 사이로 파리 한마리가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졌다. 놀랄 일이 아닌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지나는 파리 한 마리 조차 내겐 깨달음을 준다. "안녕? 반가워! 어디가고 있는 중인거야?" 그러자 홀연이 사라졌다. 자연은 말이 없다. 그 말 없음이 곧 대화고 그 말 없음이 내겐 큰 위로가 되어준다.


파리  마리를 통해, 자연과 나는 하나다. 일즉일체다즉일, 하나가  전체고 전체가  하나.라는 화엄경의 구절을 절로 체험한다.


그렇게 공원에서 이십여분의 시간을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울창한 나무와 나뭇잎들 사이를 걸으니 내가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질서에 대한 경외감. 아름다움. 빛. 감사함이 샘솟았다.


일 분여 지났을까. 작은 흰 나비 한 마리가 내 곁에 머물렀다. 한바퀴 뺑 돌더니. 마치 탐색하듯이. 냄새 맡듯이 머물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동시에 잠자리 두 마리가 한 몸이 되어 내 주위를 날아다녔다. 묘기 비행을 하듯 춤추었다. 그 모습이 나는 무척이나 반가웠는데, 있는 그대로 바라봄이 주는 선물이었다.


너와 나는 하나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부처님 말씀은 세상만물, 세상만사 모든 곳에 통용된다.


어느 연유에선지 마음에 잔뜩 먹구름이 낄 뻔 했는데, 곧장 알아차려 몸을 움직였다. 공원에서의 머뭄, 파리와 나비, 잠자리로 인해 나를 보게 되었다. 생각을 거듭 돌이켜 보았고 생각은 내가 아니니, 분별하지 않으니 금세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


책을 손에서 쥐곤 내려놓지 않았는데, 부정적 감정이 일거나 인간관계에서든 부정적 반응이 일어났을 때 내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책을 집어드는 일인데, 효과 있다. 책을 단 몇 장이라도 몇 단락이라도 읽어내려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가라앉는다. 이해되지 않음. 짜증, 화남, 분노, 억울함, 미움 등의 감정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 자리엔 이해, 친절, 상냥, 수용, 용서, 감사의 마음이 차오른다.


조금 전 책을 내려놓는 순간, 내 괴로움은 해소된 듯한 개운함을 느꼈다. 평온했고 무슨 일이 있었지.싶을 만큼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니 어떤 반응도 하지 않게 되었을 뿐더러, 무심하게 대처했다.


영원한 게 있던가. 그러니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되는 것을, 모든 문제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아서, 판단해서, 집착해서 아니던가.


마음에 비가 내리면, 먹구름이 잔뜩 끼면, 눈보라가 휘몰아치면, 가장 먼저 내 안을 들여다본다.

어떤 집착이 일었는가?

어느 생각이 일으켜졌는가?

무엇을 기대했나?


결국 집착해서 기대해서였음을 깨닫게 된다.


알아차림이 없었더라면 이 몸이 나라고, 이 생각이 나라고 착각하며 끝없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 발버둥치며 살다 갔을 것이다. 순간순간의 내게, 알아차림의 힘에 이토록 감사한 이유다.


오늘 오후  파리 한 마리, 나비 한 마리, 잠자리 두 마리. 나와의 인연이다.

그들은 내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걸까?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그들이 보는 이 세상은 무슨 색일까?


그들이 오늘 내 앞에 나타난 건, 그들의 모습이 나의 거울이 아니었을런지.

어떤 것도 우연은 없다.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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